'편안한 신과 복장을 갖춘다.수첩과 펜을 꺼내고 화분 뒤에 몸을 숨긴다. 오늘의 관찰 대상은 40대 여자.목욕용품 코너에서 수건을 만지작거린다.한번 두번 세번. 네번 만졌다. 가격표를 유심히 살피더니 두 장을 집어들고 떠난다. 시간을 점검한다. 다른 매장으로 움직이는 그를 뒤쫓는다.' 파코 언더힐이 쓴 '쇼핑의 과학'(원제 'Why We Buy')은 이렇게 시작된다. 언더힐이 세운 인바이로셀이란 조사회사는 20년간 백화점 등 소매점에서 고객의 행동을 비디오로 촬영하고 따라다니며 관찰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종합,소비자 구매 행태를 찾아 효율적 매장 구성 등 9백여가지의 마케팅 기법을 제시했다. 생활용품점 여자고객의 평균 쇼핑시간은 '여자친구를 동반하면 8분15초,아이를 데려오면 7분19초,혼자 오면 5분2초,남자와 오면 4분41초'라는 식이다. 언더힐은 남자들의 경우 쇼핑을 지루해 하며 따라서 여성복 매장엔 남자가 앉아서 쉴 의자를 놓거나 남자의 눈길을 끌 만한 뭔가를 장만해두라고 조언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팔까'는 소매업체의 지상과제다. 국내에서도 백화점과 할인점 모두 바코드와 신용카드 전표를 이용한 데이터와 시장 상황에 따라 상품의 구색과 진열법을 바꾼다. 꽃미남 붐에 맞춘 남성화장품 매장 개설,주 5일제 이후의 레저용품 매장 증설,즉석식품과 반찬 판매대 확충 등이 그것이다. 일본 이토추상사에서 고객이 언제 어떤 상품을 얼마나 만져 봤는지 시간과 횟수 등을 재는 장치를 개발했다고 한다. 이걸 쓰면 인바이로셀 조사원처럼 쫓아다닐 일 없이 사무실에 앉아 고객이 무슨 물건에 관심을 갖는지,만져본 걸 샀는지,만지작거리기만 하고 구입하진 않았는지 등을 알 수 있다는 얘기다. 모든 판매전략의 근간은 정확한 데이터와 추세 분석이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것,시선은 잡았으나 정작 팔리진 않은 것을 알면 인기품 추가생산 등 즉각적인 대응책 수립이 가능할 것이다. 유통업체엔 획기적 소식일 수 있겠지만 소비자로선 쇼핑습관까지 들통난다는 얘기같아 꺼림칙하다. 자꾸 늘어나는 보이지 않는 감시의 눈 앞에 우리의 사생활은 어느 정도 지켜질 수 있을까.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