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가 너무 어려워요" 학생들이 아닌 학부모들의 하소연이다. 학교숙제가 아이들의 능력을 벗어난 경우가 많아 사실상 숙제를 도와주는 부모들에게 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아래한글이나 엑셀,파워포인트같은 '고급기술'을 동원해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해 숙제가 공포의 대상이라는 부모들도 있다. 숙제에 투입되는 시간과 노력이 만만치 않아 특히 시간에 쫓기는 맞벌이 부모의 고충은 더하다. 출판회사에 다니는 손정인씨(35·마포 도화동)는 퇴근하자마자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의 '알림장'을 펼쳐보는 게 일이다. 알림장이란 그날의 숙제와 다음날 챙겨갈 준비물이 적혀있는 메모장.최근 숙제는 '독서신문 만들기'였다. 주어진 시간은 이틀.아이 혼자 하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손씨는 남편에게 부랴부랴 전화를 걸어 퇴근길에 도화지를 사오게 한 후 인터넷 '숙제 도우미' 사이트에서 샘플을 찾았다. 세 식구가 세 시간 이상을 끙끙대며 '작품'을 만들었다. 손씨는 "숙제 대부분이 부모의 도움이 필요한데 야근이라도 있는 날에는 밤 늦게 준비물 살 방법조차 막막하다"며 "일하는 엄마들 사이에서는 '공포의 알림장'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돌 정도"라고 말한다. 문화기획자로 일하는 정수민씨(36·서울 홍은동)는 최근 초등학교 2학년 딸의 알림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폐품을 활용해 미래사회의 모습을 만들어 보라'는 것.정씨는 "상상력을 키워준다는 취지는 좋지만 미래가 무엇인지 의미도 모르거니와 폐품이라고는 신문지와 페트병이 전부인 아홉살짜리 아이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숙제"라며 "아이들의 숙제는 부모에게 가해지는 노역에 다름 아니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몸'으로 때울 수 없는 숙제는 부담이 더 크다.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이용해야 하는 숙제가 대표적이다. 잡지사 에디터 김준호씨(39·경기 과천시 중앙동)도 최근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의 숙제를 돕느라 밤을 새웠다. '4∼6학년 학생의 컴퓨터 이용 실태 조사'라는 숙제 때문이었다. 학생들에게 설문을 돌려 실태를 평가·분석한 후 아래아한글을 활용해 문서로 만드는 것이 숙제였다. 설문은 그렇다 치더라도 열두살짜리 아이가 결과를 분석하고 서식으로까지 만들어내는 것은 무리라는 게 김씨의 지적이다. 김씨는 "숙제란 아이들이 스스로 해내되 정말 어려운 부분을 부모가 도와 끝내도록 하는 것이 아니냐"며 "교육 방향에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 월계동에 사는 전업주부 박미영씨(35)는 최근 노원구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운영하는 컴퓨터교실에 등록했다. '취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 숙제를 돕기 위한 준비 차원에서다. "아이가 지금은 1학년이지만 이웃 엄마들로부터 4∼5학년 정도 되면 파워포인트 등을 사용해야 하는 숙제가 많아진다고 들었다"며 "미리 배워두기 위해 학원에 다니기로 했다"는 게 박씨의 컴퓨터교실 등록 이유다. 이에 대해 교육 전문가들은 "숙제의 취지는 그날 배운 내용을 반복 학습하고 보충하는 것인데 취지와 달리 부모 몫으로 전가되는 경향이 크다"며 "컴퓨터나 프린터 등 하드웨어를 동원해야 하는 숙제는 가정에 장비가 없을 경우 아이들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