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류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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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프러시아·오스트리아의 영토전쟁에서 패한 덴마크 국민들은 실의에 빠져 그야말로 희망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 때 공병장교 출신의 달가스라는 농촌부흥운동가가 나타나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자" "황무지 유틀란드 반도의 모래 언덕을 장미꽃 향기가 가득한 젖과 꿀이 흐르는 옥토로 바꾸자"고 외쳤다.
차츰 국민들의 마음이 움직여 대대적인 개간사업이 전개되면서 국가 부흥의 초석이 마련됐다.
덴마크의 영웅 달가스는 한동안 우리나라에서도 농촌계몽운동가들 사이에서 정신적인 지주로 떠받들어졌다.
피폐한 농촌을 살리자는 운동이 여기저기서 일어났고 심훈의 소설 '상록수'에서 보듯 실제 많은 젊은이들이 학업을 중단하고 농촌으로 뛰어들었다.
이들은 문맹퇴치와 미신타파에 앞장섰고 적극적인 소득증대운동을 벌였다.
달가스를 국내에 소개하고 농촌계몽운동의 선구자였던 류달영 박사(93)가 지난 27일 별세했다.
1930년대부터 농촌살리기와 자연보호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던 류 박사가,박정희 대통령 시절 국민재건운동본부장을 맡아 전국을 돌며 정력적으로 '잘 살기 운동'을 벌였던 일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생생히 남아 있다.
식량자급자족이 최우선 과제였던 당시 그는 수원인근에 '평화농장'을 만들어 몸소 농사를 짓는 모범을 보이기도 했다.
류 박사의 나라사랑은 무궁화심기로 이어져 '무궁화 선비'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일제시대에는 일명 '무궁화 동산 사건'으로 체포돼 고초를 겪기도 했는데 일제는 생명력이 강한 무궁화가 저항의지를 상징한다 해서 철저히 배격했다.
꽃가루가 눈을 멀게 한다는 등의 낭설을 퍼뜨리는가 하면 일부러 화장실 주변에 나무를 심어 지저분하다는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수많은 저서와 글 그리고 행동을 통해 평생을 실천가로 살아온 류 박사가 피난 중에 쓴 '새 역사를 위하여'는 아직도 우리에게 적잖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다 함께 억척스럽고 올바르게 앞으로 행진하자.진리와 동행하는 자만이 번영의 역사의 주인이 될 것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