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三鉉 < 숭실대 법학과 교수 >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이 1년 전에 비해 11단계나 하락,29위에 랭크됐다고 한다. 더욱이 '의회의 효율성 부문'은 1백4개국 중 85위,부정부패지수는 50위인 반면 인터넷서비스업체의 경쟁력은 3위에 랭크돼 있는 등 공공부문의 경쟁력은 하위인 반면 민간부문이 상위권이라는 점은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현정부와 여당은 정쟁에만 열을 올리고 있어 우리 경제의 앞날이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도 국민들은 현 노무현 대통령이 경제문제를 가장 우선시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금번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우리를 매우 실망스럽게 하고 있다. 우선 개정안의 내용을 보면 여전히 특정 대기업은 순자산의 25% 이상을 다른 기업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제한 대상기업 13개 중 9개사가 출자총액제한 때문에 신규투자를 포기했거나,기업구조조정이 지연된 경험을 갖고 있다고 한다. 현재 세계경제의 화두는 규모와 범위의 경제이며,선진 각국은 투자의 활성화를 최고의 과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재벌의 경제력집중 억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 어처구니없는 우를 범하고 있다. 원래 자본시장이란 정부가 정한 숫자에 따라 규율될 수 없는 본질을 갖고 있다. 이는 아무리 정부가 효율적인 출자총액제한을 한다하더라도 시장에서는 폐해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디 투자 활성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 공정거래법 개정작업이 이뤄지길 빈다. 또 정부는 금번 법개정을 통해 자산 5조원 이상 되는 기업집단소속 금융기관의 의결권을 15%로 낮추고자 하고 있다. 이는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인식됐던 관치금융의 강화를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 원칙하에 일반회사가 금융기관의 주식을 소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금융기관이 일반회사의 주식을 소유하는 것도 제한해 왔으며 이는 관치금융의 중요한 수단이기도 했다. 그러나 1998년 자본시장이 전면 개방된 이후 외국자본이 우리 기업들을 적대적 인수·합병(M&A)의 표적으로 삼으면서 이에 대한 보완조치로 경영권 방어가 필요한 경우 금융기관도 일반회사의 주주로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 다소나마 분리원칙을 수정한 바 있다. 다만 대기업의 경우에는 아무리 경영권 방어의 필요성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총수의 전횡을 방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전제아래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속한 금융·보험사의 총수와 특수관계인은 보유주식 중 30% 이내에서만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제한한 바 있다. 그리고 금번 개정안에서는 상기의 30% 요건을 15%로 낮추고자 하고 있다. 결국 우리 정부는 우리 기업들이 외국 투기자본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보다 대기업 총수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이 더 나쁘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와 유사하게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정책을 펴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도 실질적으로 경쟁을 제한하거나 독점을 형성한 경우에 한해서만 의결권 제한을 가하고 있으며,유럽은 아예 유니버설 뱅킹 시스템아래에서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지배하는 것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인지 오래다. 특히 규모면에서 미국의 1%도 안되는 우리의 자본시장을 고려해 볼 때 미국식보다는 유럽식처럼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의 조달자 역할도 병행해야만 우리 자본시장이 안정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자본시장에는 뉴브리지 캐피털과 같은 외국의 투기자본들이 우리 기업을 인수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으며 소버린과 같은 자산운용사들이 우리가 일군 대기업들의 경영권을 노리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추진되고 있는 공정거래법 개정작업은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매우 우려된다. 부디 우리 경제와 우리 기업들을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작업이 이뤄지기를 기대해본다. /기업소송연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