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그릇된 역사관부터 바로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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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에 관한 소설을 쓰면서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은 우리 국민의 이상한 역사관이다. 그건 얼마전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가 화제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고구려에 대한 향수와 애착이 뜨거울수록 상대적으로 신라에 대한 미움과 증오도 커진다는 사실이다. 나는 혼란에 빠졌다. 그렇다면 고구려만 우리 선조가 세운 나라였던가? 고구려를 동경하는 사람들은 대개 북방의 광활한 영토와 대륙을 호령하던 웅장한 스케일을 흠모한다.
그 위대한 나라를 변방의 조그만 신라가 당나라와 짜고 망하게 만들었으니 오늘날 우리가 요모양 요꼴로 찌그러져 산다는 식이다.
백제에 대한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거기엔 근년의 역사가 만들어 낸 지역감정도 한몫 단단히 하는 모양이다. 경상도 국가인 신라가 전라도의 백제를 잡아먹었는데 그 역시 외세와 결탁해 동족을 배신한 형태로 묘사되기 일쑤다.
왜 이런 터무니없는 역사관이 횡행하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삼국시대는 동족의 시대가 아니었다.
민족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던 건 물론이고 엄밀히 따져 동족도 아니었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완수하는 과정에서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뿐 아니라 북방의 말갈족까지 받아들여 비로소 지금 우리가 말하는 '한민족'을 정형화시켰다. 고구려 영토인 요동지역을 상실한 게 신라의 허물이라면, 우리 민족을 중국과 분리시키고 한반도 안에서 정형화시킨 것이 신라의 공로다. 땅 대신 사람을 얻은 격이다.
역사에서 가정이란 게 쓸모 없지만 만일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그 뒤 대륙의 역사가 요동치면서 십중팔구 한반도 전역이 중국의 변방으로 전락했을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지도상에 존재할수 있는 근거가 신라의 삼국통일이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이는 우리 국민들의 편협한 태도와 인식의 유치함에 있다. 고구려를 동경하면 신라를 싫어하고 계백이 좋으면 김유신을 미워하는 것이다. 이는 중국인들이 유비와 관우도 사랑하지만 조조와 손권도 아끼는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모두 우리 역사요 우리의 선조가 세웠던 나라인데 그 후손인 우리가 왜 하나를 좋아하면 다른 하나를 싫어하고 배척해야 하는지 도대체 그런 그릇된 역사관이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 모르겠다.
1천년 뒤에 우리 후손들이 지금의 남북한 가운데 어느 하나를 좋아하고 다른 하나를 싫어한다고 가정해 보라. 더구나 오늘날의 영호남은 그때의 신라 백제와는 하등 무관하다.그럼에도 우리의 대립적인 역사 인식은 변함없이 지속된다.
참으로 허무맹랑한 일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자.서구에선 역사적 인물들을 끊임없이 발굴하거나 다양한 형태로 확대 재생산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이나 셰익스피어,아더왕,잔다르크,심지어 고대 신화 속 인물들까지도 시대적인 변화에 따라 감각을 바꿔가며 소설 연극 뮤지컬 애니메이션 영화 등으로 부단히 재해석한다.
가까운 일본도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오다 노부나가,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같은 막부시대의 장수들을 지겨울 정도로 우려먹는다.
그만큼 자신들의 역사와 인물에 애착과 자긍심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겐 5천년의 유구한 역사가 있다.파고들면 하나같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이야기,빛나는 문화상품으로 자랑할수 있는 소재들이 널려있는 셈이다. 세계가 다투어 자신들의 역사를 다양하게 가공하고 문화산업으로 발전시키려고 혈안이 된 이때,우리의 역사관만 언제까지 영토주의 시각에 갇혀 엄마 좋아,아빠 좋아 식의 유치한 놀음만 계속하고 있을 것인가!
후손들이 외면하는 역사는 역사가 아니다.
그런 역사는 언제든 남에게 빼앗길 수 있고 남이 빼앗아가도 말 한마디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21세기,인터넷으로 세계가 하나의 공간에서 호흡하는 마당에 낡아빠진 영토주의 시각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
영토란 이제 머릿속에 남은 추상일 뿐 현실이 아닐 지 모른다.
빨리 미망에서 깨어나자.보석같은 5천년 역사,창고에서 잠자는 저 무수한 원석들을 꺼내 세계가 부러워할 고부가가치의 문화상품으로 가꿔나갈 때다.
/대하소설 '삼한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