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에서 개인으로,단기에서 장기로.' 한국 간접투자 35년의 역사는 투자자 저변의 확대와 투자문화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이같이 정리될 수 있다. 1969년 증권투자신탁업법 제정으로 본격적인 간접투자시대가 열렸다. 1970년에는 현 대한투자증권의 전신인 투자공사가 설립돼 국내 최초의 펀드인 제1투자신탁(1억계좌)이 나왔다. 이후 간접투자시장은 굴곡이 있기는 했지만 주식시장의 발전과 새로운 투자상품에 대한 투자자들의 욕구,외국사들의 진출 등으로 간접투자시장은 계속 성장해 왔다. 초창기에 간접투자는 자기책임과 시장논리가 적용되는 '투자'라기보다 예금과 같은 보장상품으로 여겨졌다.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 아래 펀드는 예금보다 높은 수익이 보장되는 상품으로 인식됐었다. 1990년 예금 금리를 훨씬 웃도는 수익을 보장하면서 이에 미달하는 부분은 투신사가 자기 자금으로 무조건 채우도록 한 '보장형 주식형펀드'는 가장 대표적인 반(反)시장 상품으로 평가된다. 1996년부터는 외국사들이 진출,국내에서도 외국 펀드 상품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 외환위기를 겪은 후에 나온 뮤추얼펀드는 고수익을 보장하는 마법의 상품으로 각광받기도 했다. 박현주펀드와 바이코리아펀드는 뮤추얼펀드 붐을 일으켰다. 특히 바이코리아펀드는 10조원이 넘는 자금을 끌어모아 한국 간접투자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하지만 곧 이은 대우사태와 주가 급락 등으로 투자자들이 엄청난 손실을 겪었고 간접투자시장도 큰 타격을 받았다. 이는 우리 간접투자시장이 안고 있었던 '원죄'와도 무관하지 않다. 펀드가 위험이 따르는 투자가 아니라 원금이 보장되는 저축처럼 인식됐다는 점도 그렇지만,무엇보다 펀드의 설정·판매·운용을 모두 한 회사(옛 투신사)에서 맡아 했다는 점에서 펀드의 부실은 예정돼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강창희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장은 "특히 투신사들이 자기 자본으로 운용되는 고유계정과 투자자금을 굴리는 고객(신탁)계정을 구분하지 않고 섞어 불신을 자초한 것은 오늘날까지 간접투자시장의 성숙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장애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비과세펀드가 출시되고 장기증권저축,적립형랩,적립식펀드 등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간접투자시장은 다시 도약의 시대를 맞고 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