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7년 8월31일 파리 센강변의 지하차도에서 발생한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의 죽음은 그녀를 끈질기게 추적하는 사진기자들,즉 '파파라치(Paparazzi)' 때문이었다. 파파라치는 새삼 매스컴에 크게 부각되기 시작했고 우리에게도 친숙한 단어로 다가왔다. 파파라치는 '왱왱거리며 달려드는 파리떼'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인데 다이애나 사망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남의 약점을 이용해 고발하는 사람들에게 '∼파라치'라는 말을 죄다 붙이고 있다. 한동안 유행했던 카파라치 쓰파라치 표파라치 과파라치 등은 한물 간 얘기들이고 주파라치(주식시장의 불공정거래),노파라치(노래방 불법영업),팜파라치(의약품 불법행위) 등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그런가 싶더니 최근에는 불량식품을 고발하는 '식(食)파라치'까지 등장했다. 이제 '파라치'는 엉뚱하게도 하나의 직업군으로 자리잡은 셈이다. 그 이면에는 각종 불법행위를 단속하는 수단으로 포상금제도가 경쟁적으로 신설되고 아울러 기존의 포상금도 대폭 오르고 있어서다. 웬만한 월급쟁이가 부럽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따지고 보면 요즘같은 구직난시대에 카메라 한대 사는 초기 투자비용으로 이만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일이 또 무엇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이처럼 파라치들이 만연되면서 포상금제도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사회의 각종 부조리를 포상금이라는 대가로 해결하려는 것은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일 뿐 국민들의 진정한 신고정신과는 괴리가 있다는 얘기다. 자칫 믿음의 사회가 실종되고 이웃간 불신의 관계가 심화되는 것은 아닐지 하는 걱정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그 부작용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파라치들의 폭로건수가 급증하면서 특히 식품업체들의 경우는 순전히 보상금만을 노린 악의적인 사건이 일어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사실여부를 떠나 인터넷에 한번 뜨기라도 하면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파라치들의 신고정신을 나무랄 일은 아니나 순전히 돈벌이를 위한 밀고(密告)가 돼서는 곤란하다. 밀고는 건강한 사회를 좀먹는 바이러스에 다름아니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