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수뇌부의 지도력이 흔들리고 있다. 국가적 쟁점으로 떠오른 국가보안법 처리와 과거사,행정수도 이전 문제 등을 놓고 당내 갈등을 조정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국론분열 양상을 보이는 이들 사안을 조기에 매듭짓지 못함에 따라 국민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약속 못지켜 지도력 상처=최근들어 여야 지도부의 약속은 지켜진 게 거의 없다. 그만큼 말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공약(空約)'이 이어지면서 상처 또한 적지않다.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는 정기국회를 시작하면서 23일까지 국가보안법 처리에 대한 당론을 정하고 친일진상규명특별법은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다. 기금관리기본법 공정거래법 등 경제관련 법안도 조속히 처리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이 중 아직까지 어느 것 하나도 실현되지 못했다. 특히 이 의장은 지난주 각계 원로들과의 잇단 회동 등에서 국보법 처리와 관련,"2∼3일 내로 대체입법을 할지,형법을 보완할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자신했으나 결과는 달랐다. 당내 이견이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다 일부 문건이 흘러나가면서 갈등이 첨예화돼 '태스크포스팀'을 해체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당론 결정은 추석 뒤로 넘어갔다. 그나마도 당초 단일안을 내겠다는 약속과는 달리 복수안을 올리는 쪽으로 후퇴했다. 과거사 문제도 당초 의욕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도 약속을 지키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박 대표는 행정수도 이전문제에 대해 추석 전 당론을 결정하겠다며 22일 기자회견까지 잡아놨다가 당내 반발이 거세자 취소했다. 사전에 의원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게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도 "모든 것을 걸고 막아내겠다"는 당초 입장에서 체제수호를 전제로 '정부 참칭' 대목을 없앨 수 있다고 했다가 보수파의 비난에 직면하자 다시 "달라진 게 없다"고 한발 물러서는 등 갈지자 행보를 보였다. 여당의 입장을 요구하면서 정작 한나라당 당론은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박 대표는 '리더십 부재'비판이 일자 23일 "얼굴마담으로 보지말라"며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새 지도력은 '아직 실험중'=새로운 정치환경에 따른 새 지도력 형성이 아직 본궤도에 오르지 못한데 따른 불가피한 진통이라는 분석이다. 의원들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어느 때보다 커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새로운 정치환경을 여야 지도부가 적절히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숭실대 강원택 교수는 "과거 3김시대와는 다른 형태의 리더십으로 가는 과도기에서 여야 지도부와 의원 모두 새로운 정치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당 지도부가 내부 이견을 추스르고 조정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미흡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재창·홍영식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