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보다 품은 더 드는데,폼은 덜 나죠." 대한통운 중부영업소에서 일하는 택배원 신현필씨(34).입사 3년차인 그는 요즘 추석으로 인해 배달물량이 많이 늘어났지만 비싼 선물은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없다고 추석경기를 전했다. 추석을 열흘 앞둔 지난 17일 새벽 그는 동료들과 함께 늘어난 물량을 처리하느라 한바탕 전쟁 중이었다. 대한통운 중부영업소 현장에는 11t 트럭 14대가 쉴새 없이 물건을 쏟아붓고 직원들은 물건을 분류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물량이 늘었다고 추석 경기가 좋다고 보면 착각"이라고 택배원들은 입을 모은다. "올 추석이 지난해와 달리 농산물 수확기와 겹쳐서 그래요. 때마침 올해 풍년이라 부피 크고 비싸지 않은 과일이며 곡물 선물이 많이 늘어난 겁니다." 그러고 보니 작업장엔 지명이 표시된 사과 배 쌀 수산물 등이 즐비해 '할인점 식품 창고'를 방불케 했다. "비싼 술이나 갈비 등은 가뭄에 콩나듯 해 올해는 5만원 이하 선물이 90%는 넘는 것 같다"는 것이 본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신씨는 "강남은 그래도 덜한 편"이라며 "요즘 시골에서 기본적인 농산물을 부쳐다 먹는 집이 많은지 고추 참기름 등이 서울로 엄청 올라온다"고 전했다. 아침 10시,터져나갈듯한 2.5t 트럭을 몰고 신씨가 향한 곳은 강남역 사거리.그가 담당하는 지역은 대기업 사무실,고급 주택 등이 섞여있는 서초동 '부촌(富村)'이다. 신씨는 "올해는 잘 사는 집이라도 10만원 이상 되는 선물을 들고 가는 일이 별로 없다"면서 "강남이라고 별로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신씨는 자신이 관할하는 구역에 '이름만 대면 알만한 분들이 많이 산다'고 귀띔한다. 올해 달라진 점이 있냐고 묻자 윤리경영 여파인지 "지난해와 달리 하루에 한 두집 정도는 '어디서 보냈든 상관없이 안받겠다'며 선물 받기를 거절하는 집들이 생겼다"고 했다. 기업들이 선물 택배를 의뢰하는 건수도 많이 줄었다. 택배사로 배달하면 선물 받기를 거절할까봐 임원들이 직접 들고 찾아가는 일이 많다는 것.신씨는 이 때문에 "작년보다 기업 물량이 반 이상은 준 것 같다"고 푸념했다. 이날 신씨가 배달한 물량은 2백여 개.하루 종일 '3분에 한집 꼴'로 정신없이 뛰어 다녀야 배달을 마칠 수 있는 물량이다. 추석을 앞둔 2주일 정도는 새벽 6시 출근,밤 1~2시 퇴근이 예사다. 신씨도 신참 땐 추석 배달을 마치고 일주일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했다. 때문에 매년 이즈음이면 택배일을 그만두는 사람이 많은데,올해는 거의 없다고."그만큼 일자리 구하기 힘들다는 거 아니겠어요." 신씨가 절감하는 추석 경기의 한 단면이다. 송주희 기자 y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