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인적자원부가 고교등급제를 적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사립 6개대에 대해 17일 전격 실태조사를 벌이기로 결정한 것은 이들 대학의 해명이 미흡해 국민적 불신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교육부는 대학별로 수시2학기 모집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단 `사실 확인'또는 `자료 조사' 차원에서 표본조사를 벌여 그 결과에 따라 조사 대상 확대 여부를결정한다는 방침이지만 어떤 결론을 내놓더라도 이번 조사 결과가 가져올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고교등급제' 논란 경위 = 연세대 등 일부 사립대의 고교등급제 적용 여부가현안으로 떠오른 것은 지난달 26일 교육인적자원부와 교육혁신위원회가 `2008학년도이후 대입제도 개선안'을 내놓으면서부터. 수능성적에 9등급제를 적용, 당락에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대신 내신, 즉 학생부성적 위주 입학전형을 실시하도록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 대입제도 개선안은 학교교육을 정상화시킨다는 차원에서 환영을 받았지만 고교간 학력격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받았다. 따라서 대학이 본고사 부활을 요구하고 일선 고교에 서열을 매겨 전형에 반영할것이라는 전망이 나왔고 학원가와 학교 현장에서는 `이미 어느어느 대학이 수시모집등에서 고교등급제를 반영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또 어윤대 고려대 총장이 "고교간 학력차가 엄연한 현실에서 이를 입시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히고 일부 대학 입시처장 등이 학교간 학력차를 인정해야한다는 발언이 잇따라 나왔다. 이 와중에 이주호 한나라당 의원이 지역.학교간 학력차를 보여주는 교육과정평가원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내놓으면서 대학측 요구는 설득력을 얻는 듯 했다. 그러나 이 의원이 발표한 자료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된데다 전교조가 "연세대수시모집에서 강남 학생보다 월등한 내신성적을 얻은 비강남권 학생이 1단계 전형에서 상당수 탈락했다"고 주장, 근거 자료를 내놓으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연세대는 "자체 개발한 산출 방식에 따라 내신성적은 합.불합격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서류전형에서 대부분 당락이 갈렸다"고 해명했으나 전교조는 비교과 성적이 탁월한 비강남권 학생도 떨어졌다고 재반박했다. 결국 참교육학부모회와 전교조 등은 잇따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상조사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 실태조사 어떻게 = 교육부가 실태조사에 나선 것은 특별감사까지 요구하는이들 단체의 압박이 점점 거세진데다 대학측 해명이 미흡해 대입전형에 대한 학부모.학생.교사의 의혹과 불신이 커지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더욱이 이번 사안을 조기 진화하지 않을 경우 이달말까지 확정해 발표하기로 한`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자칫 대입제도개선안 자체가 백지화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까지 느꼈던 것으로 풀이된다. 한석수 교육부 학사지원과장은 "수시2학기 모집이 진행중이라는 점을 감안해 교육부가 가급적 나서지 않고 대학측에 스스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해명할 기회를 줬으나 충분치 못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따라서 대학의 입학전형 업무를 고려, 2명씩을 1개조로 편성해 대학별로 3일간 실태조사를 벌이되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을 정도의 표본을 추출하기로 했다. 집중적으로 조사할 항목은 `대학마다 전형기준을 제대로 마련해 그 기준대로 시행했는지' 여부다. 한 과장은 "대학별로 전형기준이 다르고 내신 비교과 영역, 면접, 논술, 서류전형 등의 성적 산출시 심사 교수의 주관적 판단이 있을 수 있는 만큼 대학측 전형 결과를 최대한 존중할 방침"이라며 "그러나 채점 결과를 보면 고교등급제 적용 여부를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류전형 등에 심사 교수들이 주관적으로 매긴 점수를 객관화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번 실태조사가 `겉핥기'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 실태조사 결과 `파장' 주목 = 실태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파장이 엄청나게 확대될 수도 있다. 한 과장은 "고교등급제 적용 사실이 적발되면 지원예산 삭감 등 강력한 행.재정제재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지만 탈락자 등에 대한 후속조치에 대해서는 "결과를 예단할 수 없는데 그 이후 상황은 그 때 가서 검토할 것"이라고 한발 뺐다. 그러나 전교조가 이미 피해자를 모아 수시모집 무효화를 위해 법적 대응을 전개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탈락자의 소송이 잇따를 가능성이 높아 법정 공방도 배제할수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이들 중 1개 대학이라도 고교등급제 또는 학교간 학력격차를 적용했거나특정지역 학생에게 유.불리를 줬다는 사실이 드러날 경우 비단 올해 수시모집 뿐 아니라 대입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번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을 원점 재검토해야 하는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교육부가 실태조사를 벌여 `주관적 평가가 가능한 서류전형에서 당락이 갈렸다'고 결론을 내려 대학측 손을 들어준다 해도 시민.교원단체가 이를 수용, 고교등급제논쟁이 진화될 지는 미지수. 결국 이들 단체와 대학측이 주고받던 `공'은 교육부로 넘어왔지만 교육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 결정은 또다른 공방의 시작일 뿐'이라는 전망이 우세한실정이다. (서울=연합뉴스) 강의영 기자 keyke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