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창당 이후 줄곧 '자랑'했던 당정분리 문제가 최근 도마에 오르고 있다. 국가보안법과 출자총액제한제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열린우리당의 정책방향이 노무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춤추는' 듯한 양상을 보이면서 당정분리의 한계를 보여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당정분리의 핵심은 집권여당 소속인 대통령이 여당을 지배하지 않는다는 것.대통령과 여당이 수평적인 관계라는 얘기다. 당헌 126조에서 '당원이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그 임기동안 당직을 가질 수 없다'고 규정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실제 대통령의 여권내 위상은 대통령이 직접 당 총재나 명예총재를 맡았던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현재 노 대통령은 '수석당원'이다. 이부영 의장은 '가장 중요한 당원'이라고 표현했다. 이렇다보니 과거 정권에서 관행이 되다시피한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주례회동도 사라진 지 오래다. 특히 과거 대통령이 각종 선거 후보공천 등 인사권과 자금,조직력을 토대로 한 카리스마를 갖고 집권당을 좌지우지했던 점에 비춰볼때 현 여권은 적어도 이런 행태로부터는 자유로워졌다고 볼 수 있다. 실제 노 대통령이 선거 공천권을 포함해 당의 인사에 개입했다거나 돈으로 여당을 지배한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외형상으로는 당정분리가 이뤄졌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여권에 대한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정책면에서는 대통령의 파워가 더 세졌다는 비판적 시각이 적지 않다. 특정 현안에 대해 대통령이 과거와 같이 청와대로 직접 불러 지시하지 않더라도 국민을 향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여당으로서는 운신의 폭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당내에서는 "대통령이 민감한 사안에 대해 자꾸만 앞장서 방향을 제시하면 과거와 같이 청와대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한 재선 의원은 "대통령이 현안에 앞장서는 게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했고,한 초선의원은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한 말에 어떻게 반기를 들겠느냐"고 반문했다. 숭실대 강원택 교수는 7일 "대통령 탄핵문제가 총선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상황에서 당정분리가 가능한지 의문"이라며 "대통령이 당의 구심점을 만들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당 장악력을 높인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여당의 행태는 외형상 분리에도 불구하고 각론에서는 대통령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는 당정분리의 현주소를 보여준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재창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