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와 광화문 증권가. 외형상으로는 이제 뉴욕 월가와 별로 다를 게 없다. 모건스탠리 JP모건 골드만삭스 ING베어링 등 세계 주요 투자은행들의 간판을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 중인 외국계 증권사는 모두 15개.여기에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업체인 피델리티를 비롯 UBS 얼라이언스캐피털 맨인베스트먼트 등 내로라하는 대형업체들이 한국시장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피델리티는 한국에서 운용되는 펀드 규모를 모두 합친 것보다 7배가 넘는 1조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 '공룡'이다. 문제는 국내 금융시장이 거의 모두 이들에게 넘어갔다는 데 있다. 주식시장은 물론이고 2~3년 안에 5백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되는 펀드시장도 조만간 외국계의 영향권으로 빨려들어갈 위기에 처해있다. 외국계 자산운용사(국내사와 전략적 제휴 포함)의 펀드시장 점유율은 지난 2000년 4.9%에서 올 8월 말 현재 38.4%로 치솟았다. 피델리티 등이 진출할 경우 50% 돌파는 '시간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특히 외국계는 돈 되는 알짜시장을 이미 장악했다. 막대한 자본력,브랜드 파워,해외 네트워크 등을 무기로 국내 증권사엔 생소한 기업금융(IB) 등 고수익 분야에 일찌감치 뛰어들어 시장을 완전히 선점한 것. 실제 예금보험공사의 하나은행 지분 매각(1조7백억원,UBS),신한지주의 신한은행 지분매각(6천3백억원,모건스탠리),한투·대투증권 매각(모건스탠리) 등 올해 성사됐거나 진행 중인 대형거래는 모두 외국계가 주간사를 도맡았다. 최대 2조원대로 추정되는 진로 매각 주간사도 메릴린치 ABN암로 씨티그룹 등 외국계 3파전으로 압축된 상태다. 작년에도 미국 블룸버그통신 조사 결과 국내 인수·합병(M&A) 중개실적 톱10 중 국내에선 삼성증권만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을 뿐이다. 해외채권 발행과 대형 기업공개(IPO)도 마찬가지다. 지난 5월 SK텔레콤의 3천8백76억원 규모 해외 교환사채(EB)와 9월 초 KT의 1억달러짜리 30년만기 해외채권 발행 역시 각각 리먼브러더스와 메릴린치 작품이었다. 올해 최대 IPO였던 LG필립스LCD의 한·미 동시상장도 해외 공모는 외국계가 맡았다. 한 대형 증권사 IB담당 임원은 "설령 공동주간사를 맡아도 외국계와 국내사의 해외 판매력은 9 대 1까지 벌어진다"며 "판매력에서 뒤처지다 보니 주간사 업무와 관련한 온갖 허드렛일은 다 하고도 수익 배분에선 결국 불이익을 당하는 게 현실"이라고 푸념했다. 특히 외국계 사모주식투자펀드(PEF)는 '기업사냥'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론스타펀드의 외환은행 인수,칼라일그룹의 한미은행 인수 후 매각,뉴브릿지캐피털의 제일은행 인수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 정부가 뒤늦게 관련법을 만들어 대응할 채비를 하고 있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금융시장은 물론 초우량 기업의 경영까지 외국인이 좌지우지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얘기다. 김형태 한국증권연구원 부원장은 "제1금융권(은행)이 외국계 손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2금융권(증권·투신)까지 주도권을 빼앗길 경우 금융주권은 물론 경제주권조차 상실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주용석·이상열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