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진출한 우리나라 제조업 공장이 위협받고 있다.

극심한 전력난으로 공장가동이 멈추는가 하면 일부 공장은 직공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제조업 천국"이라던 중국의 환상이 깨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저장성 자싱에 자리잡고 있는 한국타이어. 한 해 승용차타이어 7백50만개를 중국시장에 판매,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는 업체다.

후진타오 주석이 칭찬했다는 바로 그 회사다.

이 회사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한영길 사장은 지난 7월 시정부 관계자들과 벌였던 "피 말리는 협상"을 잊지 못한다.

당시 그는 '상의할 일이 있으니 만나자'는 시정부 공문을 받고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전력문제가 자싱시 최대 투자 기업인 한국타이어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음을 직감한 것이다.

시정부 관계자는 "더 이상 한국타이어만 봐줄 수 없을 정도로 전력 사정이 악화됐다"며 "1주일에 이틀 정도는 공장 가동을 멈춰달라"고 애걸했다.

한 사장은 "사정은 잘 알겠다. 그러나 1초라도 쉴 수 없는 게 타이어 공장이다. 조업 중단은 있을 수 없다"고 설득했다.

그는 미리 만들어간 절전계획도 제출했다.

"한국타이어가 자싱 경제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말했고,전력을 끊는다면 향후 추가 투자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도 놓았습니다. 결국 그들이 손을 들더군요."(한 사장)

결국 한국타이어는 전력난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한국타이어는 행복한 경우다.

전력난이 극심한 저장,장쑤성 대부분의 기업들이 여름 끝물인 지금도 1주일에 3∼4일씩 공장 가동을 멈춰야 하는 처지다.

장쑤성 전장에 있는 안경 코팅업체인 A사의 경우 사전 통보 없는 단전으로 공정 중이던 재료를 모두 폐기 처분하는 극한 상황을 맞기도 했다.

저장성의 경공업 도시인 이우시 진출 기업들은 공장 가동을 전면 중단하라는 시정부의 정책에 따라 올 여름 제대로 공장을 돌리지 못했다.

전력난은 이제 중국 전역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산둥 광둥 푸젠 등지의 기업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전력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산둥성 칭다오에 있는 방직업체인 D사는 전력 사정 악화로 하도급업체와의 유기적인 협력관계가 깨져 타격을 입기도 했다.

베이징현대자동차는 '의무 휴가'를 가기도 했다.

야간조업 및 주말조업 등으로 생산성이 떨어졌고,생산라인 재가동에 따른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인력문제도 공장을 위협하는 요소다.

'흔한 게 사람'이라는 중국에서 일부 지역 공장들은 일손을 구하지 못해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가장 심각한 지역은 광둥.둥관 선전 등 주장삼각주 지역에 진출한 제조업체들은 현재 직공 적정 인력의 15∼30% 정도가 모자라는 실정이다.

둥관에 진출한 완구업체인 베스트웨이는 약 1천2백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나 20% 정도가 모자라는 형편이다.

이 회사 최병완 대표는 "광둥지역으로 유입되는 외지 직공들의 수가 크게 줄어들면서 업체간 '직원 모시기'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주장삼각주 기업들은 전력난과 함께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주장삼각주 지역에서만 약 2백만명의 직공이 부족한 실정이다.

직공 부족 현상은 도시에서 떨어진 곳일수록 심각하다.

산둥성 원덩에 있는 피혁업체인 영백산업의 경우 2천여명인 적정 인원의 10%에 달하는 2백명의 직공 결손이 발생했다.

이 회사 곽병호 부사장은 "젊은이들이 도시 외자기업을 선호하면서 직원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허난 쓰촨 등지의 농촌에서 중고 졸업생을 집단적으로 데려오지만 상당수가 고향으로 되돌아가거나,옌타이 칭다오 등 인근으로 빠져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 담벼락에 구인공고를 붙이면 구직자들이 장사진을 치던 것은 옛일이 되고 말았다.

모든 게 풍족할 것 같았던 중국 공장에 찾아온 위기는 우리나라 제조업체들의 중국사업에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다.

중국에 공장만 세우면 나머지 환경은 쉽게 해결될 거라는 생각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철저한 사전준비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