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적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 시민들은 유.무죄를 치열하게 다투는 살인사건에서 어떤 결론을 내릴까? 시민들만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내린 결론과 법관이 함께 합의해 내린 결론은 어떻게 다를까?'

사법개혁위원회가 26일 사법사상 처음으로 실시한 배심.참심 모의재판에는 외국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검찰과 변호인의 치열한 공방이 눈길을 끌었다.

모의 사건은 대졸 실업자인 28세 남성이 양재동 '양재 시민의 숲' 공원 공중화장실에서 40대 여성의 돈을 빼앗으려다 피해자가 저항하자 흉기로 살해한 뒤 달아났다는 내용.

물증은 없었다.

짧은 시간 범인의 얼굴을 봤다는 피해자 딸과 공원관리인, 경찰이 검찰 증인으로, 사건 당시 피고인과 당구게임을 했다는 친구와 당구장 주인이 변호인측 증인으로 나섰다.

"배심원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으로 피고인의 범행을 밝히고 피해자 가족들에게위로가 되길 바랍니다"(검사 대역 김진 변호사)

"갑작스럽게 범인으로 몰린 피고인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도 내린 것 같고 죽은 사람을 불러내서라도 범인이 아님을 확인받고 싶습니다"(변호인 대역 한택근변호사)

14명의 배심원들 앞에 선 양측은 모두(冒頭) 진술부터 한 치의 양보가 없었다.

피해자의 딸(20)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분명히 범인의 얼굴을 봤고 피고인이 바로 범인"이라고 증언했고, 검찰은 딸이 투명거울을 사이에 두고 5명의 용의자 중 피고인을 지목하는 장면도 비디오 증거물로 제시했다.

그러나 변호인은 딸이 머뭇거리다 "잘 보면 생각날 것"이라는 경찰의 말을 듣고 피고인을 지목한 점이나 경찰 몽타주가 다른 사람들의 사진과도 혼동할 수 있는 점등을 들어 반박했다.

피고인의 친구는 "그날 오후 2시에 분명히 함께 당구를 쳤다"고 말했지만 검사는 "왜 처음에는 시간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다가 법정에서 갑자기 생각났다고 하느냐"며 "친구끼리 입을 맞춘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검찰과 변호인 양측의 신문 사이마다 반대편에서는 계속해서 "이의 있다" "지금 유도신문을 하고 있다" "사실 관계가 아닌, 의견을 묻고 있다", "강압적인 방법으로 신문을 하고 있다"라는 주장이 터져나와 법정을 달궜다.

오후에 실시된 참심 모의재판 역시 참심원들이 판사와 동등한 자격으로 재판에 참여하기 때문에 검찰과 변호인은 재판부와 참심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배심원과 참심원들은 재판 참가 전 사건 기록이나 내용을 전혀 알 수 없도록 규정하고 검찰과 변호인측은 공판에 모든 힘을 쏟았다.

모든 증인들의 증언을 들은 뒤 양측의 최후변론.

검사는 "진실을 판단할 분들은 배심원 여러분뿐"이라며 "딸이 투명거울 뒤에서 곧바로 피고인을 지목했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고 이 지역에 사는 피고인은 근처지리를 잘 알아 공원관리인을 따돌리고 도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변호인은 "피고인의 집에서는 피해자가 강탈당했다는 목걸이도, 신용카드도, 흉기나 어떤 혈흔도 나오지 않았다"며 "물증도 없이, 질문에 따라 왜곡되기 쉬운 목격자 증언만 듣고 유죄평결을 내려 무고한 시민을 살인범으로 몰아서는 안된다"고 호소했다.

(서울=연합뉴스) 이광철 김상희 기자 gcmoon@yna.co.kr lilygardene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