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곡수매의 국회동의제도 폐지를 골자로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내놨다.

물론 국회의 통과절차를 거쳐야 하고,정부는 공공비축제도를 도입해 적정 물량을 시세로 수매할 수 있게 했지만 한마디로 지난 1948년 건국 이래 지속돼 온 추곡수매제도의 폐지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우리 농정의 일대전환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추곡수매제도 폐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정부가 수확기에 쌀을 사들여 쌀값을 안정시키고 수급을 조절한다는 본래 기능이 이미 크게 퇴색됐기 때문이다.

해마다 3천만석 이상의 쌀이 생산되는데도 수매물량은 지난해의 경우 5백여만석에 그쳤고,소비량은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여 재고만 올해 6백80만석에 이를 정도다.

더구나 추곡수매자금은 세계무역기구(WTO)가 대표적인 감축대상보조금(AMS)으로 규정해놓고 있어 이번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에서 합의된 원칙에서도 이같은 보조금을 적용 첫해 20% 감축하도록 돼있다.

특히 올해안에 매듭지어야 할 쌀 협상이 어떤 식으로 결론나더라도 쌀 수입물량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 이상 추곡수매를 통한 쌀 가격지지와 농가소득 보전 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추곡수매가격은 매년 정치논리에 의해 정부안보다 높게 결정되는 일이 반복됨으로써 재정부담을 늘리고 시장을 왜곡시켜온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문제는 쌀이 농가소득의 절대 비중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추곡수매폐지에 따른 농가피해와 소득보전을 어떻게 해줄 것이냐 하는 점이다.

전체 농업소득 가운에 쌀이 차지하는 비중이 50%에 이를 정도로 쌀은 농가경제의 가장 중요한 소득원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5백만~6백만석 정도의 공공비축제를 도입한다지만 지금 재고량을 감안하면 그 효과가 의문일 수밖에 없다.

또 농가소득보전을 위한 다양한 직불제 등은 자칫 농업의 구조조정을 지연시키게 되는 부작용도 무시하기 어렵다.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쌀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생산·유통·소비가 시장원리로 움직일수 있도록 하는 체제를 구축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영세농을 전업농 중심체제로 전환시켜 수입 쌀과의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소비자의 고품질 쌀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품질고급화 추진이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전업농 육성을 통한 규모의 경제성 확보,생산비 절감,쌀 유통체계의 혁신을 위한 철저한 대책 수립을 서두르고 차질없는 실행에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