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헌혈캠페인에 커다란 성조기가 등장하곤 한다.

은연중에 헌혈은 곧 애국심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캠페인 문구도 "헌혈합시다.공급이 부족해서는 안됩니다"라고 담백하게 호소하고 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이 같은 헌혈캠페인은 주요 국가시책으로 추진되고 있는데 이는 혈액을 대체할 물질이 아직 개발되지 않아서다.

우리나라 역시 헌혈캠페인은 연중 무휴로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도 혈액 부족사태는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아 의료진과 환자들의 피를 말리고 있다고 한다.

적정재고량은커녕 요즘에는 당일치 소요량도 채우지 못해 일부 병원에서는 수술을 연기할 정도로 사정이 악화일로에 있다는 소식이다.

이런 현상은 학교와 군부대 등의 단체헌혈이 줄어든 탓도 있지만,적십자사가 에이즈나 간염양성반응을 보인 혈액을 유통시킨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정적인 여론이 크게 작용한 듯하다.

적십자사의 혈액사업에 대해서는 그동안도 여러 차례 많은 비판이 뒤따랐다.

혈액사업을 적십자사에만 맡겨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들끓자 지난달 말에는 정부가 '혈액안전 종합대책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헌혈한 사람에게 다양한 인센티브를 주고 '헌혈의 날'을 제정하겠다는 것이다.

혈액사업의 일부 책임을 국가가 자임하고 나선 셈이다.

국내 혈액사업은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6·25전쟁 당시 미국에서 혈액을 공수해 병원에 공급했는데 미군은 1953년 말 혈액 공급중단을 선언했다.

갑작스러운 혈액기근을 우리 병원들은 매혈에 의존해 메워나갔고 단골손님은 고학생들과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헌혈'이라는 말이 생소한 터여서 매혈이 그리 크게 문제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 후 '세계 헌혈의 해'를 맞아 대한적십자사가 대대적인 헌혈캠페인을 벌이면서 매혈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고 '혈액관리법'이 제정되면서 매혈은 범죄로 규정됐다.

흔히 헌혈은 '고귀한 생명을 살리는 사랑의 실천'이라고 말한다.

내 이웃 내 가족을 위하는 일에 헌혈만한 일도 없다는 점을 차제에 한번쯤 되새겼으면 한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