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은 판타스틱영화제를 열기에는 다소 큰 도시이지만 관객의 열기는 어느 영화제보다도 뜨겁습니다.

여기에 부천영화제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판타스틱 페스티벌이 되어가는 셈이죠."

15일 개막한 부천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이며 개막작 '개미들의 왕'(The Kingof Ants)의 감독인 스튜어트 고든은 관객의 열기를 부천영화제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이 때문에 큰 도시면서도 판타스틱영화제가 활기를 띠고 있는 것 같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16일 오후 영화제 본부가 있는 복사골 문화센터에서 만난 고든 감독은 "30년 전 처음 김치를 맛본 이후 줄곧 한국에 오고 싶었다"고 농담을 던지며 "큰 극장과 이를가득 매운 관객의 활기찬 표정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85년 데뷔작 '좀비오'(Re-Animator)로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등장한 그는 몸이 잘려나가고 피가 화면을 채우는 스플래터 영화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인정받고 있다.

'아이가 줄었어요'의 시나리오를 쓰고 속편의 제작을 맡았으며 미래의 감옥을 그린 '포트리스'를 연출하는 등 주류 영화계의 끈도 놓지 않고 있지만 '인형E들'(Dolls)이나 '스페이스 트러커'(Space Truckers) 같은 비주류 저예산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개막작 '개미들의 왕'은 그가 2003년 만든 최근작. 평범한 청년 숀(크리스 매케나)은 갱단의 청탁으로 살인을 하게 되고 이들 갱은 이 청년을 시골의 외딴 집에 가둔 채 린치를 하기 시작한다.

자신들에 대한 기억을 잊게 하겠다는 것. 정신은 점점몽롱해지고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던 차에 숀은 탈출을 감행하고 자신이 죽인 사람의 부인을 찾아간다.
개미는 갱들이 숀을 조롱하던 말. 개미만큼 하찮은 존재라는 뜻이다.

영화는 전작들에 비해 과장된 공포의 재미는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주인공이느끼는 공포는 현실적으로 보이는 편. 그는 "원작이 소설인 까닭에 판타스틱한 폭력보다는 현실성 있는 폭력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하며 "관객 자신이 주인공 숀처럼 구타당한다는 느낌을 갖게 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수입사 관계자를 아직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한국 관객이 영화를 꼭 봤으면 좋겠다"는 그는 수입추천이나 등급분류 등 심의제도에 관심을 표시하며 한국 개봉이가능할지 궁금해 하기도 했다.

감독은 "한국이 세계 영화계에서 위대한 영화들의 중심에 있다"고 칭찬하며 "아직 기억에 남을 만한 한국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올드보이'나 '오아시스'에 대한호평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한국에 머무는 동안 이 영화들을 꼭 관람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단편부문 심사위원장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도 꼭구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차기작으로 '파고'의 윌리엄 H. 메이시와 '내 남자친구는 왕자님'의 줄리아 스타일스를 주연으로 캐스팅한 영화 '에드먼드'와 뉴욕 전체가 유해물질의 위협을 받는다는 내용의 공포물 '레이디스 나이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뒤 반전(反戰)을 다룬 영화도 조만간 만들고 싶다며 60년대 후반 반전운동을 한 경험을 들려주기도 했다.

당시 대학생이던 그는 피터팬을 반전운동가로, 후크 선장을 정치인들로 표현해재구성한 연극 '피터팬'을 무대에 올렸고 이 때문에 경찰에 잡혀가기도 했다고. 그는 "미국이 전세계가 원하지 않는 전쟁을 하고 있다"며 "한국에도 반전 운동의 움직임이 있는 게 반갑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끝내며 그에게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포괄적인 질문을 던져봤다.
"영화는 '꿈'과 같은 것." 자신의 영화관을 들려줬다.

"어제 저녁 개막식에서 상영된 유현목 감독의 '춘몽'을 보고 영화가 꿈과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른 사람과 꿈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영화의 가장 큰 장점 아닐까요? 이런 생각에서 앞으로도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
(부천=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bk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