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는 트인 사람이었다.

아랫사람을 기용할 때 출생을 따지지 않았고 재능만 있으면 과감하게 발탁했다.

'산은 티끌 하나하나를 품어야 높아질 수 있고 바다는 가는 물줄기들을 받아들여야 깊어진다'는 생각으로 인재들을 모았다.

심지어 경쟁자이며 사람들을 잘 쓴다고 이름난 촉의 유비,오나라의 손권까지 '스카우트' 대상이었다.

그의 파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여자를 좋아해 부인만도 열다섯 명이나 되었는데 신분이 미천하더라도 사랑하기만 하면 처첩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들로 하여금 개가하는 자유도 허락해 '두 번 시집가서는 안된다'는 당시의 전통질서를 뒤집었다.

그는 또한 교활했다.

건안 25년(220년) 낙양에서 병사한 조조는 서교 인근 30리 떨어진 곳에 묻혔다.

그 곳에는 여기저기 크고 작은 언덕들이 있는데 도굴을 우려한 그가 죽기 전에 만들어놓은 가짜 무덤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죽어가던 그는 아들 3형제를 국경지방으로 보내고 평소 아끼던 양아들 서달만 불렀다.

자기가 죽으면 비밀장소에 묻은 후 72개의 관과 묘를 더 만들게 하고 진짜 묘 위치를 아는 사람도 전부 죽이라고 시켰다.

그 다음 붉고 푸른 옷을 입고 세 형들을 맞이하라 일렀다.

명령대로 일은 진행했으나 서달이 그 몸치장으로 성할 리는 만무.제일 먼저 도착한 형으로부터 칼부림 세례를 받았다.

이때부터 그의 무덤 위치는 영원한 수수께끼가 되었다.'

'조조의 면경(面經)'(사마열인 지음,홍윤기 옮김,넥서스BOOKS)에는 간웅과 영웅의 경계를 넘나든 한 풍운아의 변화무쌍한 '얼굴 처세술'이 담겨 있다.

정통 역사서인 진수의 '삼국지'에서 이야기의 소재를 따왔으며 '주역''손자병법' 마오쩌둥의 독서담 등 많은 저작들이 인용되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6백40쪽,2만3천원.

김홍조 편집위원 kiru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