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및 자산운용업계가 인수합병(M&A)을 통한 구조조정 회오리 속으로 급속히 빨려들고 있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14일 한투와 대투의 우선협상대상자로 동원금융지주와 영국계 PCA를 각각 지정, 1970년대 이후 국내 투신산업을 이끌어온 양사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기 때문이다.

이로써 인수대상인 한투증권과 한투운용, 대투증권과 대투운용은 물론 LG투자증권의 M&A 작업도 급물살을 타게 됐다.

PCA와 함께 대투 인수에 컨소시엄으로 참여한 서울증권의 향후 거취도 관심사다.

제일투자증권 동양오리온투자증권 등 전환증권사의 구조조정도 임박해 있다.

◆ M&A 통한 본격적인 대형화

증권 및 자산운용업계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도 금융구조조정의 '무풍지대'로 남아있었다.

97년 말 이후 은행은 합병과 퇴출 등을 통해 33개에서 19개로 줄었지만 증권사는 35개에서 44개로 오히려 9개 증가했다.

자산운용사 역시 31개에서 45개로 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영업환경이 급속히 악화되면서 증권 및 자산운용업계의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은 점차 임계점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구조조정을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구조조정 회오리는 대형사에서 시작됐다.

동원금융지주와 PCA가 한투 및 대투를 인수할 경우 한투증권 자회사인 한투운용과 동원증권 자회사인 동원투신, PCA투신과 대투운용간 합병은 불가피해진다.

또 PCA가 대투증권 인수를 위해 조지 소로스가 대주주인 서울증권을 파트너로 끌어들인 점을 감안하면 대투증권과 서울증권간 합병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게 증권업계의 관측이다.

업계 2위 증권사인 LG투자증권의 매각작업도 한층 빨라질 수 있다.

우리금융지주와 대만 유완타증권이 현재 실사를 진행 중이며 만일 우리금융쪽으로 넘어가면 우리증권과 LG투자증권의 통합은 불가피해진다.

제일투자증권 동양오리온투자증권 등 전환증권사의 구조조정도 임박한 상황이다.

김형태 한국증권연구원 부원장은 "LG투자 한투 대투증권 등의 매각을 기점으로 대형 증권ㆍ자산운용사간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것"이라며 "당국은 상품인가 등의 유인책을 제공해 대형사의 추가적인 통합을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좁아지는 중소형사의 입지

대형사를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이 급물살을 타면 중소형사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IB(기업금융) 등을 통한 신규 수익원 창출은 요원하고 자산관리 영업은 은행권에 빠르게 잠식당한 상황에서 주수익원인 위탁매매수수료(증권사) 운용수수료(자산운용사)는 99년에 비해 절반으로 줄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사들이 몸집을 키우며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해 나갈 경우 중소업체들의 영업난은 갈수록 심화될 것이 자명하다.

'덩치키우기'에 동참하거나 특화ㆍ전문화로 새 살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향후 2∼3년 내 일부 중소형사의 퇴출이 불가피해질 것이란 얘기다.

실제 지난해 말 한 외국계 컨설팅회사는 현재 44개 증권사중 20개 이상은 정리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재룡 한국펀드평가 사장은 "중소형 증권사를 모회사로 둔 자산운용사는 앞으로 특화와 전문화로 생존 전략을 확보하지 못하면 영업상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중소형 증권사간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유도하기 위해 정부가 대주주에게 세제혜택 등 '유인책'을 부여해야 한다는 요구가 강해지고 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