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지도부의 말발이 서지 않고 있다. 당 지도부가 주요 정책에 대한 소신을 피력했다가 뒤늦게 정부 입장과 충돌하면서 혼선을 빚고, 원내에선 초ㆍ재선 의원들이 지도부와는 다른 의견을 쏟아내는데도 제대로 조정하지 못하는 등 중심을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렇다 보니 "여당이 왜 이러지"라는 지적과 함께 지도부 책임론이 불거질 조짐마저 나타나는 등 지도력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 소장파 '통제' 안돼 =지난 29일 본회의에서 한나라당 박창달 의원 체포동의안이 부결된게 대표적 사례다. 열린우리당이 과반이 넘는 1백52석을 확보하고 있어 열린우리당만으로도 얼마든지 가결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던 만큼 지도부의 지나친 낙관주의에 근거한 안이한 대처가 '사고'로 이어졌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당장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되거나 기소위기에 처한 여당 의원들이 30여명에 달하는 형국이라 반대표가 충분히 예상됐는 데도 사전에 이를 단속하려는 노력이 없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실제 여당의 '반란표'가 무려 30표 이상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당 지도부는 결국 소속 의원들을 믿었다가 '정치개혁과 깨끗한 정치실현'이라는 당면 목표에 상처를 입었다. 비단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당 지도부의 적극적인 이라크 파병 설득노력에도 불구하고 소장파를 중심으로 27명이 지난 23일 야당과 공조해 '이라크 파병중단 및 재검토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 지도부를 곤혹스럽게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의욕을 보였던 '김혁규 총리카드'가 물건너간 단초를 제공한 것도 야당이 아닌 바로 당내 소장파의 반발이었다. ◆ 정책혼선 자초 =지도부가 정부 입장과 다른 소신발언을 했다가 곤욕을 치른 경우가 적지 않았다. 당장 정부가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약칭 고비처)에 대한 기소권을 부여하지 않기로 입장을 정리한 터에 천정배 원내대표가 기소권 부여방침을 분명히 하면서 논란이 가열됐다. 결국 정부가 29일 반대입장을 잠정 확정함으로써 당ㆍ정간 갈등의 골이 한층 깊어진 상황이다. 향후 당정협의에서의 진통이 예상된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문제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당정회의에서 정부가 원가연동제를 도입키로 의견이 모아진 상태에서 당 지도부가 잇달아 "원가공개라는 총선공약이 백지화된 것은 아니다"고 반박하면서 혼선이 빚어졌다. 결국 노 대통령이 두 사안에 대해 정부편을 드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당이 정부에 끌려다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책임여당이라는 말이 무색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재창ㆍ박해영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