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풀이를 해서는 안된다. 우리 국민도 정신차려야…."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2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언론들이 외교부 사무관의 AP통신 확인 전화 '묵살'에 대한 비판기사를 해명하면서 뜻밖에도 이같이 말했다. 반 장관은 그러면서 "정무직인 장관으로서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 그러나 이 얘기는 꼭 하고 싶었다. 뻔뻔하다거나 지탄을 받더라도…"라고 덧붙였다. 작심한 듯 목청도 높았다. 반 장관의 목소리는 주이라크 한국대사관의 '인력부족' 얘기를 할 때 더욱 컸다. 그는 "아직도 가나무역 직원을 포함해 지·상사직원 25명이 철수하지 않고 있다. 이래도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정부는 신이 아니다"고 항변했다. 반 장관은 "(김선일씨 피살사건은) 정책의 문제가 아니고 사고다. 사고를 막는 나라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반 장관은 "언론들이 잘 보도해줄 것을 호소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물론 반 장관의 이런 입장을 십분 이해하고 싶다. AP통신 기자가 외교부에 전화를 걸 때 한국인이 납치됐다는 것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인 데다 AP통신의 질문 또한 명확하지 않았다는 주장에는 일면 수긍도 간다. 반 장관의 말대로 '35년간 밤낮없이 일해 온 공직생활의 명예가 한순간에 매도'되고 있기 때문에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것마저 인정하고 싶다. "이런 일을 갖고 장관한테 사퇴하라고 하면 누가 장관하겠느냐"고 반문하는 것도 이해하려 한다. 그런데도 뭔가 개운찮은 뒷맛이 남는다. 반 장관의 얘기를 듣다보면 점차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외교부 사무관 2명도 아니고 5명이나 외부 확인전화를 소홀히 취급한 것에 대해 반 장관처럼 "억울하다"고 항변한다면 전화를 제대로 받지 않았던 사무관이나 장관이나 전혀 다를 것이 없다. 더구나 3천여명의 군대를 파견할 지역에 관련된 첩보를 소홀히 한 것에 대해서 아무리 변명해도 소용이 없다. 외교부는 입이 열개라도 변명하지 않는 편이 낫다. 억울하다고 변명할수록 '대한민국 외교관의 복무자세'만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국민들이 분노하고 언론이 외교부 직원들의 초동단계 '첩보'를 소홀히 취급한데 대해서 비판하는 것은 반 장관을 쫓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반 장관의 직접 지시로 사건을 은폐했다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는다. 김선일씨의 피랍을 떠나 대규모 병력을 파견할 지역의 정보라면 아무리 가벼운 얘기라도 내부 검증절차가 진행됐어야 하는 것이 순서다. AP통신에 책임을 돌리기에는 외교부의 일처리에 허점이 너무 많았다. 외교부와 AP통신이 진실게임을 벌였다고 비판하는 것에 '흥분'하기 보다는 외교부 직원의 복무자세부터 반성해야 한다. 지금은 외교부 직제에 차관이 1명 뿐이어서 대외업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거나 현지 외교인력이 부족해 정보수집에 문제가 있다는 타령을 할 때가 아니다. 외교부 전 직원이 냉정하게 반성하고 진실이 밝혀지도록 하는 것이 국익을 위하는 길이다. 반 장관의 지적대로 정부는 영원하다. 이번 '김선일씨 피살'을 교훈삼아 또다른 제2,제3의 유사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언론이나 국민의 비난에 억울해하는 것은 온당한 자세가 아니다. 반 장관이 국민과 언론의 비난을 서운해하는 한 "면목이 없다" "외교부 직원은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 "(외교부 직원의) 근무시간이 길고 일이 너무 많다"는 말은 진실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yg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