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피랍' 충격] (이라크 분위기) 현지체류 67명 '안전 비상'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현지 신문에 한국군 파병 소식이 1면 톱으로 보도되면서 사태가 악화되고 있습니다. 교민과 기업인들에게 무조건 빨리 이라크에서 철수하라고 독려하고 있습니다."
바그다드 현지에서 근무 중인 김규식 KOTRA 무역관장은 21일 기자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치안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고 자살폭탄 테러 첩보가 잇따르고 있다"며 자신이 살고 있는 집 주변에도 테러가 있을 것이라는 첩보가 입수돼 피신해 있는 처지라고 급박한 상황을 전했다.
현지 한국인들은 지난 17일 김씨가 납치가 됐는 데도 이틀 동안 대사관은 물론 현지 주재원들도 까맣게 이 사실을 모를 정도로 한국인끼리의 정보 공유가 되지 않았다는데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통상부 등에 따르면 현재 이라크에는 모두 67명의 한국인이 체류 중이다.
이들 중 대사관 직원이 9명, KOTRA 2명, 한국국제협력단(KOICA) 3명 등 14명이며 나머지 53명은 민간 기업인들이다.
○…김 관장은 "무역관 주변의 쿠르드족 당사를 겨냥한 자살폭탄 테러 첩보가 잇따르고 있고 실제 로켓포 공격도 있었다"며 현지의 급박한 상황을 전했다.
김 관장은 "현지 상황이 심상치 않기 때문에 KOICA 숙소로 일단 피신했으며 이곳에 집결한 협력단 관계자 등과 비상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KOTRA는 현재 무역관을 통해 현지활동이 확인된 업체는 현대건설과 가나무역 정도이며 지난해 11월 저항세력의 총격으로 직원이 사망했던 오무전기의 경우 활동 여부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KOTRA는 김 관장과 주재원의 안전을 위해 당분간 이들을 요르단 암만으로 대피토록 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국내 건설사 직원 중 유일하게 이라크에 남아 있는 현대건설 이영철 과장은 21일 기자와 전화통화를 통해 "이라크에 나와 있는 주재원들과 공관에서도 20일 오후 11시께(한국시간 새벽4시) 알 자지라 방송을 보고서야 피랍소식을 알았다"며 "현재 일체의 외부출입을 자제하고 대사관의 지시사항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 과장은 "이미 지난 4월20일 바그다드에서 요르단으로 빠지는 고속도로가 폐쇄된 후 대사관에서 공문을 통해 상사원 중 최소인원을 빼고 철수하고 팔루자 지역 접근 금지 등을 지시했다"면서 "하지만 가나무역이 미군에 납품하는 업무 특성 때문에 무리하게 사업을 벌이다 이런 불상사가 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라크 재건복구사업에 참여한 국내 기업인의 경호를 맡고 있는 S사의 K지사장은 "21일 아침 대사관으로부터 이라크에서 철수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재건사업 프로젝트 때문에 이 곳을 떠날 수 없다"며 "안전에 최대한 유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S사에는 한국인 4명을 포함해 25명이 일하고 있다.
K지사장은 "직원들이 무장한 상태로 행동하기 때문에 안전상 특별한 문제는 없다"면서도 "정권이양기와 맞물려 바그다드는 물론 이라크 전역의 치안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돼 직원들의 신경이 날카롭다"고 전했다.
이라크에 진출한 또 다른 경호업체인 NKTS도 현지인 동업자를 통해 피랍된 김선일씨의 소재지 파악과 안전귀환을 위한 방안을 모색할 것을 요청하는 등 독자적인 노력을 벌이고 있다.
NKTS 관계자는 "이라크 내 명문가 출신으로 현지인 동업자인 모하메드 알 오베이디씨를 통해 인질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고위인사 및 아랍 종족 대표들과 협력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김씨 구출을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라크에서 14년째 무역업을 하고 있는 서브넥스테크놀로지의 장연 사장은 "정권 이양기의 혼란이 진정될 때까지는 이라크 내에서 정상적인 비즈니스 활동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지난 7일 바그다드에서 빠져나온 장 사장은 "한국군의 파병결정이 내려지면서 현지 기업인들에 대한 테러와 납치위협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장 사장은 "이달말 정권이양이 이뤄지고 이라크 경찰이 치안을 맡을 경우 약탈과 강도 등의 범죄가 빈번하게 발발할 것"이라며 "돈을 노린 인질범들이 한국인을 범죄대상으로 삼을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심기ㆍ김형호ㆍ류시훈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