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에 이어 재경부가 예금보험공사 금융정보분석원의 계좌추적권 도입과 확대를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지나친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으로 재검토되어야 마땅하다. 이들 기관들은 업무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처리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이유들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러기로 말하면 모든 정부부처나 기관이 계좌추적권을 갖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불필요한 계좌추적권의 남발은 비밀보장을 전제로 한 금융실명제의 근본 취지를 훼손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업무추진상 계좌추적이 꼭 필요하다면 기왕에 그 권한을 갖고 있는 금융감독당국의 협조를 받아 처리하면 될 일이다. 정부 부처가 상호협조체제 강화나 조사기법의 선진화 등 기존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은 게을리한 채 계좌추적권 같은 손쉬운 방법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어느모로 보아도 행정편의주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큰 논란을 빚고 있는 공정위의 계좌추적권 부활만 해도 납득하기 어려운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난 99년 한시적으로 도입돼 올해초 시한만료로 폐지된 제도를 한시법의 취지까지 무시한 채 다시 부활시키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예보의 금융회사 부실책임자 등에 대한 계좌추적권 도입,금융정보분석원의 국내금융거래 전반에 대한 계좌추적권 확대방안도 그 명분이 미약하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에 국세청이 7월말부터 조세탈루 혐의만으로도 계좌추적을 임의로 할 수 있게 된 것은 부당한 재산권 침해논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우리가 더욱 걱정하는 것은 계좌추적권에 그치지 않고 다른 분야에서도 이같은 행정편의주의가 만연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기존에 사법경찰권을 갖고 있는 환경부와 노동부외에 정보통신부가 사법경찰권의 행사범위를 사이버범죄로 확대하고 공정위가 담합행위 단속을 이유로 사법경찰권 확보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나,참여정부 출범 이후 잇따른 정부조직의 확대개편도 따지고 보면 그런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정부가 기존 조직과 시스템으로 새로운 행정수요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조직의 신설과 확대를 통해 쉽게 해결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할 계좌추적권이 광범위하게 행사되면 가뜩이나 어려운 금융시장을 경색시켜 경제회복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부작용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계좌추적권 문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