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좋아지는 약 주세요.' 요즘 서울 강남의 병원과 약국에는 '머리 좋아지는 약'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검찰이 '머리 좋아지는 약'을 국제우편물로 위장 수입한 사건을 발표한 후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이 약은 지난 해부터 강남을 중심으로 유통돼 왔다. '공부 잘하게 하는 약' 또는 '머리 좋아지는 약'으로 알려진 이 약을 먹고 성적이 평균 몇점 올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이 약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 약은 주의력 결핍과 과잉행동 장애 치료제로 의사 처방을 받아 복용할 수 있는 전문 의약품이며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마약류로 분류돼 있다. 정상적인 학생들이 성적을 올리려고 이 약을 복용했을 경우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볼 수도 있다고 일부 의사들은 밝히고 있다. 그러나 외적 스트레스나 뇌신경 이상 등 다른 문제로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경우에는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으며, 성장을 지연시킬 수도 있다고 의사들은 경고하고 있다. '머리 좋아지는 약'에 대해 알아본다. ◆ 집중력을 높여준다 ='머리를 좋게 하며 성적을 올려준다'는 약은 대부분 행동이 부산하고 주의력이 부족한 병인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ㆍADHD) 치료제이다. 메틸페니데이트가 주성분으로 지난 1937년 스위스 노바티스사가 ADHD 치료제로 처음 개발해 지금까지도 치료 효과를 인정받고 있는 약이다. 메틸페니데이트 성분은 뇌에서 사고를 관장하는 이마엽(전두엽)의 기능을 좋게 해 ADHD를 치료한다. 이 메틸페니데이트 성분이 들어 있는 약이 집중력을 높여준다고 해서 '머리 좋아지는 약' '공부 잘하게 하는 약'으로 소문이 난 것이다. 현재 국내 판매 중인 대표적인 메틸페니데이트 성분의 약으로는 콘서타(한국 얀센),메칠펜(SK제약), 페니드정과 메타데이트CD(환인제약) 등이 있다. 노바티스사 제품(라틸렌)은 국내에 판매되지 않는다. ◆ 국내 ADHD 환자만 1백만명 =ADHD는 5∼7세 때 흔히 발생하는 행동장애로, 뇌 전두엽의 이상이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국내외 연구결과에 따르면 학교를 다니는 아이의 3∼5%가 ADHD에 해당하며 이 중 남자가 여자보다 3∼6배가량 많다. 국내에는 1백만명 이상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ADHD는 단순히 아동의 어떤 성격이나 특성이 아니라, 소아정신과적 질환이다. ADHD 환자는 주의가 산만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며 감정 기복이 심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할 경우 학습장애를 일으킨다. 주요 증상으로는 △공부나 놀이를 할 때 주의 집중을 못하고 △물건을 잘 잃어버리며 △숙제 학교공부 등 지속적인 정신적 집중이 필요한 일을 싫어하거나 꺼리고 △교실처럼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할 곳에서 이곳저곳으로 뛰어나니며 △자신의 순서를 지키지 못하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마치 모터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런 ADHD 아동은 학교생활에서 따돌림을 당하기 쉽고, 친구를 새롭게 사귀거나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또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스포츠 등 방과 후 활동을 즐기기가 힘들다. 물론 학업 수행에도 많은 어려움을 보인다. 게다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30∼50%가 청소년기와 성인기까지 이런 증세가 지속된다. ADHD는 약물 치료와 비약물 치료(인지치료, 행동치료, 보호자 교육, 놀이치료 등)로 고치며 두 가지를 동시에 병행하기도 한다.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약물은 메틸페니데이트이며, 치료 효과가 90%를 웃돈다. 이 약물은 충동성과 과잉운동성을 줄여주고, 주의력은 증진시켜 준다. 특히 과다 행동이 많을수록, 주의 집중이 떨어질수록, 운동기능이 서투른 정도가 심할수록 약물 반응이 좋아진다. ◆ 정상아의 집중력 향상여부는 논란 =ADHD 환자는 약을 장기 복용해야 한다. ADHD 치료 약들은 효과가 뛰어나면서 안전한 것으로 판명돼 있어 장기 복용하더라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오랜 연구 결과에서도 중독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단기적인 부작용으로는 불면 식욕감퇴 복통 등을 꼽을 수 있으나 그 정도가 경미하며 용량 조절이나 투약시간 변경 등으로 해결될 수 있다. 문제는 자녀의 성적 올리기에만 신경을 쏟고 있는 부모들이 의사의 진단없이 약을 구해 자녀들에게 복용하게 하는 경우다. 이마엽의 기능을 좋게 해 집중력을 개선시키므로 ADHD환자가 아니더라도 이 약을 먹으면 이마엽의 기능이 좋아져 성적이 오른다는 소문이 나면서 수요가 늘고 있다. 일부 의사들도 머리가 좋아지는 약이라고 소개하며 ADHD가 없더라도 처방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게 관계자의 지적이다. 이 약이 정상아의 집중력을 향상시켜 과연 성적을 올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일부 의사들은 성적을 올리려고 약을 먹을 경우 단기간에는 효과를 볼 수도 있다고 밝히고 있다. 주의력을 집중시킴으로써 암기력과 이해력을 높여줘 성적을 올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ADHD는 아니지만 산만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아이에게 이 약을 먹였다가 효과를 본 경우가 적지 않다는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자녀가 ADHD 환자인데도 ADHD가 아닌 줄 알고 약을 먹여 집중력이 좋아져 성적이 올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또다른 일부에서는 정상아에게는 약효가 발휘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주의력 집중을 포함한 인지기능 개선이 정상아에게 나타난다는 연구 보고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약은 주의력이 떨어지는 아이에게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주는 것이므로 정상적인 뇌를 가진 아이들에게는 효과가 없다고 설명한다. 김문권 기자 mkkim@hankyung.com 도움말=유한익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교수, 정유숙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