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달간 전국 각지는 물론 물 밖(해외)까지 뒤졌지만 그림자도 못봤습니다." 국내 모 증권사 대리 손모씨는 최근 회사 감사실장에게 'A프로젝트' 추진결과를 '포기'로 최종 보고했다. 근사한 이름과 달리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횡령직원 체포 및 회삿돈 회수'였다. 5명으로 이뤄진 팀은 최근 석달간 밤낮 없이 뛰었지만 '작정하고 튄' 사람을 아마추어기법으로 찾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극비사항인 만큼 팀 활동자금은 회사임원들의 갹출금 2억원으로 충당했다. 손씨는 "일주일 안에 잡아주겠으니 25억원을 내라는 외국정보원 출신 브로커가 있어 놀랐다"며 "착수금을 안주는 대신 회수 자금을 5대 5로 나눈다는 확약서만 써달라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솔깃했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판단에 접촉을 끊었다"고 털어놨다. 장기불황으로 실직에 대한 불안감과 한탕주의 심리가 만연하면서 회삿돈이나 고객돈을 챙겨 도주하는 이른바 '먹튀범(먹고 튀는 범죄자)'들이 늘고 있어 기업들의 속앓이가 깊어지고 있다. 경찰에 신고하자니 외부에 알려져 기업이미지가 실추될까 우려되고 내버려 두자니 '알토란'같은 회삿돈이 아깝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먹튀범'들의 해외도주가 늘면서 자금회수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 반면,이들을 잡기 위한 비용은 대폭 증가했다. 지난 2001년 회계 담당자가 30억원을 횡령해 미국으로 도주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팀을 구성해 자체 '수사'를 지휘했던 모 협회 임원은 "달아난 직원이 금세 돈을 탕진해 버릴 것 같아 경찰만 믿고 있을 수가 없었다"며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다른 피해업체들도 일단 이같은 자체 해결방식을 선호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사설(자체) 검거조를 활용하는 이유중 하나는 공식수사 결과의 '비효율' 탓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제공조수사를 맡고 있는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은 단순한 협력기구에 불과해 웬만한 액수의 횡령사건에 대해서는 강력한 공조요청이 어렵다는 것. 게다가 인터폴과의 협력수사를 담당하는 경찰청 외사 3과 국제공조수사계의 부족한 인력(6명)도 문제다. '살인 강도 등 강력범죄'나 '피해금액 1억원 이상인 경제범죄'가 국제공조수사 요청 대상인 점에 비춰보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2년 56명이던 국외도피사범은 지난해 1백33명으로 급증했다. 월드컵 여파로 범죄발생률이 급감했던 2002년을 제외하고 99년 이후 범죄자 국외 도피율은 연평균 10%가량씩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지난해 1백33건의 해외도주범 중 경찰에 의해 검거된 사례는 40건에 그쳤다. 경찰청 관계자는 "피해 기업이 자체적으로 외국 사설탐정을 고용하고 해외지사를 활용해 현지에 대책본부까지 차린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그렇다고 인터폴에 공조수사를 채근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