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부가 스크린쿼터(한국영화의무상영일수)축소 방침을 시사함에 따라 이를 둘러싸고 영화계와 경제계를 비롯한 각계에서 뜨거운 논란이 펼쳐질 전망이다. 최근 스크린쿼터 축소 논의과정에서 나타난 핵심 쟁점을 중심으로 스크린쿼터유지론자와 축소론자의 견해를 간추려 소개한다. ■스크린쿼터는 한국영화 부흥의 일등공신인가? △축소론 = 스크린쿼터가 제정된 것은 1966년이다. 한국영화가 경쟁력을 지니게된 것은 99년 '쉬리' 이후이므로 스크린쿼터가 절대적 요인은 아니다. 정부의 지원확대가 더 큰 보탬이 됐다. △유지론 = 스크린쿼터가 본격 가동된 것은 93년 스크린쿼터 감시단의 탄생 때부터다. 그전까지는 극장주들의 편법 상영으로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93년 이후 한국영화의 관객 점유율 추세가 스크린쿼터의 평균 준수일만큼 상승해온 것을 보면 스크린쿼터가 얼마나 한국영화 성장에 절대적인 역할을 해왔는지 알 수 있다. ■체질강화를 위해 경쟁은 필요한가? △유지론 = 외래어종이 토종물고기의 씨를 말리자 보호막을 쳐 생태계를 보호했다. 시장 점유율이 어느 정도 회복됐다고 보호막을 걷어버리면 다시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다. 제작비가 100배 이상 차이나는 할리우드 영화와 국내 영화는 애초부터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하다. △축소론 = 중국산 미꾸라지를 수입해올 때 수조에 메기를 한 마리 넣어두면 도착할 때까지 생기를 잃지 않는다고 한다. 세계화를 이룬 분야는 모두 보호장치 없이경쟁에서 이긴 것이다. ■영화만 좋으면 관객이 드는가? △축소론 = 스크린쿼터를 연간 40%로 묶어두는 것은 관객의 선택권을 막는 측면이 있다. 출판문화 보호를 위해 전국의 서점에서 우리나라 책을 40% 이상 팔라고 강제할 수 있는가. 예전에는 보호가 필요했지만 우리나라도 이제는 점유율이 60%를 넘을 만큼 성장했다. 관객 여론조사에서도 한국영화 선호도가 더 높다. △유지론 = 영화는 배급 시스템에 의해 상영 여부가 결정된다. 한국영화는 연간50편에 불과하지만 외화는 500편이 넘게 수입되므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할리우드 직배사가 흥행대작을 안 주겠다고 협박하면 극장은 관객이 잘 드는 한국영화를 내리고 신통치 않은 외화를 걸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유지론 = 한국의 스크린쿼터제는 유럽이나 아시아 각국이 성공 사례로 꼽고있다. 연간 100편 안팎의 영화를 제작하던 멕시코는 북미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뒤 10편도 채 만들지 못할 만큼 몰락했다. △축소론 = 프랑스는 이 제도를 폐지했고 스페인도 유럽연합(EU) 영화를 20% 이상 상영하도록 하는 제도를 택하고 있다. 전세계 주요국가 가운데 우리나라처럼 강력한 쿼터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없다. 스크린쿼터 때문에 우리나라가 외국에 배타적인 나라로 비치고 있다. ■스크린쿼터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제도인가? △유지론 =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아젠다에서도 문화적 예외를 인정하는데 모두 동의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도 "스크린쿼터에 대한 미국의 요구는 외국인이 투자한 기업에 한국산 제품의 사용 의무를 부과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므로 국내 자본의 영화관에 쿼터를 부여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밝히고 있다. △축소론 = 미국은 투자협정(BIT)을 맺으면서 문화적 예외를 인정하지 않고 동일한 모델을 적용하고 있다. 한미투자협정은 98년 우리나라가 제안해 양국 정상이합의했으나 스크린쿼터가 걸림돌이 돼 지금까지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한미투자협정과 스크린쿼터의 경제적 득실은? △축소론 = 국내 영화시장의 규모 5억 달러 가운데 미국영화는 2억 달러에 불과한 반면 대미 수출액은 330억 달러에 달한다. KIEP는 BIT가 체결될 경우 연간 32억4천만 달러의 외국인 직접투자가 늘어나고 국내총생산은 1.38% 늘어날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유지론 = BIT의 기대 효과는 검증된 바 없다. 그러나 스크린쿼터의 효용은 충분히 증명됐다. 더구나 영화를 포함한 영상산업은 미래의 고부가가치산업이다. 설혹 BIT가 당장의 투자 유치에 도움이 된다고 해도 문화적 정체성과 영혼을 돈과 바꾸자는 경제논리는 수용할 수 없다. ■BIT는 꼭 필요한가? △유지론 = BIT에는 독소조항이 많다. 단기성 투기까지 보호해주는가 하면 환경이나 노동자의 기본권도 제한될 소지가 많다. 미국과 쌍무협정을 맺은 37개국 가운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은 하나도 없고 모두 경제규모나 대외신인도가 많이 떨어지는 동구권, 아프리카, 아시아 빈국이 대부분이다. △축소론 = 현재 국내에 투기성 자본이 많은 까닭은 우리나라의 투자가치가 낮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안정돼야만 공장을 짓는 자본이 들어온다. BIT를 제안해놓고도 우리나라가 거부하는 꼴이어서 대외적 신뢰도가 많이 하락했다. 이를 회복하려면 하루빨리 BIT를 성사시켜야 한다. ■축소 대신 다른 실리를 취할 수는 없는가? △유지론 = 영화인들이 다른 지원은 안해주더라도 스크린쿼터만은 허물지 말라고 외치는 까닭을 헤아려야 한다. 임권택 감독도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면 영화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이 스크린쿼터에 그토록 집착하는 속셈도 따져봐야 한다. 미국은 스크린쿼터가 일단 무너지면 덤핑행위로 한국 영화계를 초토화시키려고 할것이다. 하루라도 줄이면 협상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뜻이기 때문에 '문화적 예외'라는 국제적 전통을 포기하는 셈이 된다. △축소론 = 협상에는 상대가 있는 것이어서 주고 받아야 타협이 이뤄진다. 하루도 못 줄인다는 태도가 한미 협상을 교착상태에 빠뜨리고 있다. 다른 지원방안과 함께 검토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heey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