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에 살고 있는 박모씨(65). 박씨가 회사에서 퇴직한 것은 6년 전인 1998년. 퇴직금으로 개인사업을 시작했다가 그만 동업자의 꾐에 빠져 가진 밑천을 몽땅 들어먹고 말았다. 겨우 건진 것이라곤 현재 살고 있는 35평짜리 아파트 한채뿐. 최근 2년 동안 아들과 딸로부터 용돈을 받아 부부가 먹고 살았지만 넉넉지 않은 자녀들의 살림 형편을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 박씨같은 사람을 위한 상품이 바로 '역(逆)모기지론'이다. 역모기지론이란 소유하고 있는 주택을 담보로 맡긴 뒤 매달 일정액의 대출금을 연금식으로 받는 상품을 말한다. ◆ 역모기지론이란 미국 등 선진국에서 일반화된 개념이다. 돈을 빌려 집을 사는 것을 모기지론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역모기지론은 갖고 있는 집을 담보로 대출금을 연금식으로 나눠 받는 대출을 말한다. 미국 등에선 만기 때 담보로 맡긴 집의 처분권을 금융회사에 주는 방법으로 대출금을 상환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초보 단계다.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이 지난 5월12일부터 '연금식 역모기지론'을 팔고 있다. 흥국생명도 이에 동참했다. 역모기지론의 가장 큰 특징은 연금식으로 돈을 나눠 받는다는 점. 예컨대 집을 담보로 신한은행에서 원리금 합계 1억원을 대출받았다고 치자. 이 돈을 한꺼번에 받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지정한 주기에 한번씩 받는다. 주기는 1개월, 2개월, 3개월 단위로 지정할 수 있다. 신한은행에서 연 5.7%의 금리로 1억원을 매달 10년씩 받는다고 가정할 경우, 한 달에 62만원씩 돈을 받을 수 있다. 이 돈은 대출 약정을 맺을 때 지정한 은행 계좌로 지정한 날짜에 자동 입금된다. 10년 동안은 매달 이만한 돈이 생기는 만큼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이 파는 역모기지론이 미국 등과 다른 점은 만기 때 대출금 상환방법이다. 주택 처분권을 은행에 주는 것과는 달리 신한ㆍ조흥은행은 대출금만 갚으면 되도록 했다. 경우에 따라선 다른 대출로 전환하는 방법으로 만기를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주택 소유욕이 강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를 감안한 결과다. ◆ 누가 이용하나 집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다만 본인 명의의 주택이어야 한다. 아들이나 딸, 제3자 명의 주택을 담보로는 돈을 빌릴 수 없다. 나이에는 제한이 없다. 박씨처럼 은퇴한 뒤 달랑 집 한 채로만 노후자금을 해결해야 하는 사람이 1차 대상이다. 그러나 중간에 잠시 직장을 그만뒀거나 자식을 해외에 유학보낸 사람도 집만 있으면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일시적으로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는 사람의 경우 역모기지론을 활용하면 이를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다. ◆ 대출조건은 신한ㆍ조흥은행이 취급하는 역모기지론의 최장 만기는 15년이다. 15년으로 약정하고 대출받은 뒤 3년만 지나면 대출금을 중도 상환하더라도 수수료를 내지 않는다. 금리는 고정금리와 변동금리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고정금리는 연 7.8% 수준이다. 변동금리는 CD(양도성예금증서) 유통수익률과 연동된다. 현재 CD 수익률은 연 3.7% 수준. 여기에 가산금리 2.0%가 더해진 연 5.7% 수준이 적용되고 있다. 따라서 현재로선 변동금리가 유리하다. 대출 금액은 담보주택가액을 기초로 한다. 감정가의 60%까지 대출해 준다. 감정가가 5억원이라면 최대 3억원까지 빌릴 수 있다. ◆ 내년부터는 정부가 지급보증할 전망 노령화 사회가 가속화되면서 정부 차원에서 역모기지론 활성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당장 금융회사와 계약자 모두에 지급을 보증해 주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이용자는 금융회사가 파산할 경우에도 돈을 계속 받을 수 있게 된다. 또 금융회사 역시 이용자가 계약기간을 넘겨 생존하거나 담보로 잡은 주택가격이 떨어질 경우 그에 따른 부담을 덜게 된다. 또 돈을 찾아 쓰는 방법도 △매월 일정액을 받는 연금식 △한꺼번에 받는 일시불식 △계약 이후 언제든지 돈을 꺼내쓸 수 있도록 신용한도(credit line)를 설정하는 방식 등을 모두 허용할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역모기지론은 지금보다 한층 활성화될 전망이다. 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