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시인 정규화씨(55)가 신작 시집 '슬픔의 내력'(신생)을 냈다. 수년간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한결같이 삶에 대한 희망을 노래한다. '재산을 다 날렸지만/그래도 아직 내 것은/도처에 가득하다/저 푸른 하늘과 높이 솟아 있는 해/…그래도 살만한 세상/이 모든 것이 내 것이다/이만하면 내 생애도/행복한 생애였다'('아직도 나는 부자다' 중) 시인은 사회적 실패를 존재의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강제된 가난이지만 이를 자발적으로 수용하는 넉넉함도 보인다. 또 천지자연을 소유하는 빈자의 철학을 몸으로 실현하며 미물인 달팽이를 보면서도 '무욕(無慾)'의 깨우침을 발견한다. '저것도 난세를 사는/방법일까/어쩌다가 집 없이 사는/달팽이가 되어/세상을 마음껏 조롱하는가/…하늘 아래 어딘들 몸 둘 곳 있다면/집이란 사치일지 모른다/…진작 너의 지혜를 배웠더라면/훨씬 더 마음 가벼워졌으련만/집 없이 살아가는 너의 삶이/한없이 부럽고 부럽다'('집 없는 달팽이' 중) 시인은 경남민족문학작가회의 초대 회장과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