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아물기 전인 1954년 6월1일 12세의 한 소년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세 살 때부터 소년에게 피아노를 가르친 아버지는 더 큰 물에서 소년의 재능을 키워주고 싶었다. '음악 유학'이라는 말조차 생소했던 당시 이 소년의 도미(渡美)는 세간의 화제가 됐다. 그 소년의 이름은 '한동일'이었다. '한국이 낳은 최초의 음악신동'으로 불리는 한동일씨(62)의 도미 5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가 6월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한동일씨는 이날 공연에서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피아노 협주곡 4번''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등을 들려준다. 50년 전 미국으로 건너간 직후 뉴욕 루이슨 스타디움에서 연주한 것과 같은 곡들이다. 당시 협연했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자리는 서울시향이 대신한다. 이날 음악회에는 올해 91세인 한동일씨의 부친 한인환 옹이 서울시향의 객원 단원으로 참여해 팀파니를 연주할 예정이다. 한옹은 40대 후반 서울시향의 창립 멤버로 연주를 시작해 1970년 은퇴할 때까지 활동했다. 50년 전 한동일의 유학이 성사된 데는 당시 미군 제5공군 사령관이었던 새뮤얼 E 앤더슨 중장의 도움이 컸다. 훗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령관까지 역임한 앤더슨 중장은 우연히 듣게 된 소년 한동일의 피아노 실력에 감탄해 바로 미국 유학길을 주선해 주었다. 미국 도착 이후 줄리아드 음악학교에 장학생으로 들어간 한동일은 레너드 번스타인이 심사위원장이었던 제24회 국제 레벤트리트 피아노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해 주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후 한씨는 뉴욕 필하모닉,시카고 심포니,러시아 국립 심포니 등 세계 정상급 교향악단과 협연하며 세계에 '한국 신동'의 이름을 알려왔다. 한씨는 현재 보스턴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02)3665-4950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