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하면 경제 쪽에선 어떤 것부터 챙겨야 할까요." "출자총액규제부터 풀어야지요." "만약 풀 생각이 없다면요." "'내 임기 중엔 안 푼다'고 못을 박아야지요." 지난 주 점심식사 자리에서 모 정부기관 인사와 기자 사이에 오간 대화다. 한 마디로 "출자규제 정책을 둘러싼 논란에 대통령이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게 기자의 답변이었다. 기자가 이렇게 답한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출자규제 문제는 다른 어느 사안보다도 경제팀 내의 불협화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재정경제부와 산업자원부는 규제 해제를 원하는 반면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는 요지부동이다. 특히 재경부와 공정위는 지난 5년 동안 수시로 이 문제를 놓고 이견을 노출해왔다. 얼마 전엔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이 "정부 내에도 출자와 투자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다분히 감정적으로 재경부를 공격하기도 했다. 정부 부처 간에도 정책방향을 놓고 얼마든지 이견과 공방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나의 사안을 두고 5년이 넘게 논쟁만 계속되고 급기야 '감정 싸움'으로 번진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두 부처의 감정 싸움이 자칫 다른 정책으로도 번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 김석동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이 '정책실명제' 도입론을 들고 나온 데서 벌써 그 조짐이 엿보인다. 출자규제 논란에 종지부가 필요한 두번째 이유는 이 정책이 띠고 있는 '제도로서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공정위는 출자규제 문제에 대해 '시장개혁이 이루어졌다고 판단될 때' 해제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참으로 막연한 일정이다. 지금 A,B 두 개의 투자프로젝트가 있다. 그 중 수익성은 A가 높다. 그런데 A프로젝트는 출자규제에 걸린다. 기업 경영자는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만약 A를 포기하고 B프로젝트에 투자했는데 얼마 안가 공정위가 출자규제를 풀어버리면 이 기업은 '기회이익'을 상실하는 셈이 된다. B프로젝트로 결정한 사람이 오너가 아닐 경우 그 의사결정 책임자는 목이 달아나기 십상이다. 차라리 출자규제가 풀리기를 기다리며 투자결정을 유보하는 것이 이 경영자에게는 안전한 길일 수 있다. 물론 이런 사례가 실제 기업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지는 기자도 알 수 없다. '정책의 불확실성'이 기업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상정해 본 것일 뿐이다. 노 대통령이 직무복귀 후 챙겨야 할 것은 바로 정책의 불확실성 해소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끝으로 출자규제 문제에 내포된 세번째 상징성은 '정책의 우선순위 선택'이다. 출자총액제한 제도는 당초 '대규모 기업집단의 기업확장 규제'라는 목적으로 1986년 도입됐다. 도입 당시에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기형적 제도"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경제력집중을 억제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파묻혔다. 그러다 외환위기가 터진 97년 제도 자체가 폐지됐다. 대기업들이 투자에 적극 나서도록 유도하고 쓰러지는 기업들의 M&A(인수·합병)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어서였다. 그러나 경제가 위기상황을 벗어나자 정부는 99년 다시 이 제도를 부활시켰다. 이런 사연을 돌이켜보면 출자규제의 존폐 여부는 '투자의 정책우선순위'와 연관돼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자가 노 대통령에게 출자규제 논란에 종지부를 찍도록 제언하는 것도 청와대의 정책우선순위를 가늠해 보기 위해서인 것이다. limhyu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