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배 원내대표와 홍재형 정책위원장을 새 지도부로 선출한 집권 여당과 이헌재 부총리가 이끄는 정부 경제팀이 '민생 우선'에 한 목소리를 냈다. 고유가와 중국쇼크 등으로 국내 경제에 '비상'이 걸려있는 현실에서 '성장ㆍ개혁논란'을 일시적으로 접은 봉합인지, 근본적인 정책기조의 변화를 예고한 것인지는 좀더 두고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경제위기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을 질타하면서 금융계열사 보유주식의 의결권 축소 등 개혁에 치우친 정책현안에 대해 '원점 재검토'를 시사한 것은 전향적인 정책변화를 내비친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그동안 '개혁파'들에 포위되는 듯했던 이 부총리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 경제안정과 성장에 일단 '무게' 홍 위원장은 이날 당정 협의가 끝난 뒤 가진 브리핑에서 △추경예산 편성 △연기금 및 퇴직연금 주식투자 허용 △사모펀드 활성화 △민생법안 6월국회 처리 등 재정경제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사안들을 적극 뒷받침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홍 위원장은 "(증시 폭락으로 표출된) 경제위기 상황에 대한 정부의 현실 인식이 당(黨)보다 낙관적이고 안이하지 않았나 하는 점을 지적했다"고 말해 향후 정책운용의 주안점을 경제안정과 성장에 둘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천 원내대표가 "국내외 경제여건이 매우 어렵다"며 "당에서도 정부안을 최대한 수용하도록 노력할테니 한 배를 탔다는 자세로 노력하자"고 말한 것은 성장 중시정책을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뜻으로 보여 주목된다. 여당 신임 지도부는 재경부와 공정위 간에 논란이 됐던 '금융계열사 보유주식 의결권 행사한도 축소'에 대해서도 "당정 협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다시 검토되고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말해 사실상 재경부의 '손'을 들어줬다는 평가다. ◆ '이정우-강철규 라인'과의 조율이 관심 정부ㆍ여당의 정책 지도부가 총선 이후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것은 최근 증시 붕락 조짐 등 경제여건이 급속도로 나빠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국민 사이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데도 정부와 여당이 한가롭게 '성장ㆍ분배' 논쟁을 하고 있다는 따가운 비판이 이날 당정 협의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민생우선에 호흡을 맞춘 '이헌재-홍재형 라인'이 이정우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과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으로 대표되는 정부내 분배중시 세력과의 '노선 차이'를 얼마나 조율해나갈 것이냐는 점이 과제로 지적된다. "개혁없는 성장은 열걸음도 못가 발병난다"는 이 위원장의 최근 발언은 향후 경제정책을 둘러싸고 노선투쟁이 격화될 수 있음을 예고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 비정규직 해법 등 논란지속 가능성 추경예산 편성과 민생안정 등에서는 정부와 집권 여당간에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와 노동권 강화, 스크린 쿼터 축소 등 주요 현안들에서는 상당한 진통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1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리결과 발표에 이어 15일로 예정돼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담화는 '참여정부 2기'의 정책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모은다. 노 대통령이 탄핵 굴레를 벗으면서 '생활정치'에 주안점을 둘 경우 이헌재 경제팀에 일정한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주변에서 '개혁 불가피론'의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는 점이 변수다. '노(盧)노믹스'가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지의 열쇠는 여전히 노 대통령 손에 쥐어져 있다는 얘기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