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의 시작은 양반간의 공동체적 연대였지만, 후반기로 갈수록 연줄의 중요성이 증대한다" 전상인 한림대 교수(사회학)는 8일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소장 김용학) 주최로열린 심포지엄에서 '조선시대의 사회자본: 양반의 연줄, 연계, 연대'를 주제로 발표했다. 전교수는 "어떤 무엇이 신뢰나 협동과 같은 호혜성을 제공하면 그것이 곧 사회자본"이라며 "자본주의도 모르고, 민주주의도 생소하던 조선 시대라고 해서 사회자본에 대한 논의를 원천적으로 거부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전교수는 "조선시대 양반들은 개인적 존재라기보다는 집단적 내지 집합적 존재라는 점에서 사회자본 연구를 위한 적절한 사례"라며 이들의 사회적 관계망을 ▲개인적 수준에서 맺는 사적 관계망인 연줄(network) ▲집단적 수준에서 맺는 제도적결사체인 연계(linkage) ▲문화적.상징적 공동체로서 양반사회를 의미하는 집합적수준으로서 연대(solidarity)로 구분했다. 그는 "유교를 배경으로 한 신앙공동체로서 강력한 동류의식과 동업자의식을 공유한 양반들간의 집합적 연대야말로 조선 사회의 안정을 담보한 최대의 자산"이었다며 "이후 조선조 양반들은 향촌 사회의 새로운 주역으로 자리잡으며 다양한 형식의집단적 연계를 형성했다"고 분석했다. 전교수에 따르면 "이와 같은 양반들의 공동체적 연대와 결사체적 연계는 양반상호간에 개인적 수준에서 결성되는 교환 연줄망과 병존하고 있었"지만 "조선시대를개관할 때, 큰 흐름은 전기에서 후기에 이를수록 양반간의 연대보다는 연계, 그리고연계보다는 연줄이 중요해지는 사회로 나아갔다"는 것. 그는 그 이유로 ▲조선시대 양반들이 집단적으로 구가하던 경제 성장이 16세기말 혹은 17세기 초에 절정을 이뤘으며, 이후 양반들의 공동 번영이 지속될 수 없자구체적 이익을 위한 결사나 연줄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것 ▲조선시대의 과거 제도가명목상의 개방과는 달리 실질적으로는 독과점으로 치닫고 있었다는 점 ▲18세기 이후 수전법, 이앙법 등의 발전이 초래한 농업생산력의 향상 및 상업적 농업의 발전이공동체적 유대의 약화와 개별적 이해관심의 증가로 이어졌다는 것 등을 들었다. 전교수는 "연대와 약화와 연계의 수축, 그리고 연줄의 강화는 양반들의 사회적관계가 범위의 방면에서 축소하고, 내용의 측면에서 혈연적 결속이 강화하는 것으로나타났다"며 "남녀 균분상속에서 남자 균분상속, 장남 우대상속으로의 변화, 족보작성에 있어서 남계자손 우선 편찬 방식의 보편화, 문중 조직의 형성과 강화" 등을그 변화를 반영하는 예로 지적했다. 그는 "연줄망이 좁아지고 닫혀짐으로써 조선조는 사회 전체가 승자 독식사회로변하기 시작했다"면서 "'한국사회=연줄사회'라는 오늘날의 평가는 조선시대에 이미그 단초가 내장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서울=연합뉴스) 김경희 기자 kyung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