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행정부는 과학을 정치화하고 있다. 과학이 무슨 '벤딩 머신(자판기)'과학인가." 톰 대슐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은 과학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부시 행정부의 과학정책을 그렇게 통박했다. 국방 본토안전 등 이미 정해진 정책 목적에 따라 과학을 편리한대로 꿰맞춘다는 얘기로 들렸다. 매년 4월 벚꽃 축제가 열리는 워싱턴 디시에는 과학자들이 몰려든다. 그 때를 전후해 미 과학진보협회(AAAS)가 흥미로운 정책 포럼을 개최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요구한 차년도 과학기술 예산 분석과 함께 과학,산업,경제적 주요 이슈들을 토론하는 이 포럼은 갈수록 산업계 및 경제학자들의 관심도 끌고 있다. 2004년 AAAS 포럼은 톰 대슐 의원의 '자판기' 과학 발언이 특히 호응을 얻는 분위기였다. 정부 정책에 대한 부시 대통령 과학보좌관의 방어적 발언(?)에 뒤이어 나온 것이라 특히 그랬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왔다는 것은 여기서도 느낄 수 있었다. 부시 대통령은 1천3백20억달러에 이르는 사상 최대의 연구개발 예산을 요구했다. 하지만 증가액 대부분은 국방과 안전을 위한 몫이었다. 비국방분야,개발이 아닌 순수 연구분야의 관점에서 보면 빛좋은 개살구인 셈이다. 그래선지 미국의 장기적 경제성장 원천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9·11 테러 이후 비자 및 감시시스템은 강화됐고 외국인 학생과 연구자들의 유입은 감소했다. 과학자들은 미국의 오랜 혁신기반이 됐던 과학적 개방성의 약화가 초래할 부정적 영향을 특히 우려했다. 나노 바이오 정보기술 등 신기술들의 수렴도 큰 이슈였다. 이제는 기술의 수렴 자체보다는 교육 연구 문화 등 시스템이 구조적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교육과 연구개혁에 예산이 얼마나 일관성있게 뒷받침될 수 있을지,기술의 수렴과 달리 분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치,즉 윤리적 문제는 어떻게 조정해 나갈지에 대한 고민들이 제기됐다. 이번 포럼에서 또 하나의 열띤 주제는 IT 등 일자리의 해외 아웃소싱 문제였다. 아웃소싱에 대한 찬반 이전에 진실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는 지적이 공감을 얻었다. 정부는 정확한 통계조차 모르고 있고,기업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해외 아웃소싱의 정도를 제대로 밝히길 꺼려한다는 얘기다. 컨설팅회사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분석자료를 내놓고 있으니 신뢰하기 어렵고,일반인들이 믿고 있듯이 아웃소싱의 대상이 정말 저임금 일자리만인지 불분명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중국의 부상도 핵심 주제였다. 미국 과학계가 보는 중국은 더 이상 세계의 생산공장 정도가 아니었다. 중국의 과학기술자들은 아직 덜 활용된 단계이며,이들이 본격적으로 활용되면 중국이 지식공장으로 변하는 것은 시간 문제로 인식했다. 다른 개발도상국의 발전과정에 비해 훨씬 앞 단계에서 해외 기술들이 중국에 유입되고 있는 점도 직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지금까지는 다국적 기업들이 중국에 어떤 변화를 초래하느냐가 관심거리였다면 앞으로는 중국이 이들의 경쟁과 협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는 자연스런 결론이었다. 중국으로 인해 '기술민족주의'냐,'기술세계주의'냐 하는 이분법은 이젠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듯 했다. 생각하면 이 모두 남의 얘기가 결코 아니다. 당장의 결과만을 따진다는 의미로 보면 우리야말로 '자판기'과학정책의 전형이다. 기술의 융합,산업의 융합을 말하면서 법 제도 행위가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것도 한 두가지가 아니다. 아웃소싱을 넘어 일자리가 통째로 해외로 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정부가 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도 걱정이다. 중국이 미국에 새로운 도전이라면 우리에게 무엇일지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테고…. 워싱턴 디시=논설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