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754-755년에 완성된 「화엄경」 사경(寫經)인 '신라 백지묵서(白紙墨書)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국보 제196호)은 중국유일의 여제(女帝)인 즉천무후(則天武后. 제위 690-705) 때 만든 특수문자인 '즉천무후자(則天武后字)'의 보고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박상국 예능민속실장은 '신라 백지묵서 화엄경에 나타난 즉천무후자 연구'를 진행한 결과 신라 황룡사 승려인 연기(緣起) 법사 발원으로 만든 이불경에는 13종 508자에 달하는 즉천무후자를 확인했다고 25일 밝혔다. 여기에서 확인된 즉천무후자 13종은 初(초)ㆍ年(년)ㆍ月(월)ㆍ日(일)ㆍ星(성)ㆍ正(정)ㆍ天(천)ㆍ地(지)ㆍ授(수)ㆍ證(증)ㆍ聖(성)ㆍ國(국)ㆍ人(인)으로 밝혀졌다. 이런 수치나 사용빈도는 즉천무후 제위 당시에 제작되기 시작한 불경류인 돈황사경(敦煌寫經)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박 실장은 덧붙였다. 측천무후자 사용빈도란 즉천무후자에 해당하는 글자로서 정자체와 즉천무후자로나타나는 횟수의 비율을 말한다. 즉천무후자에 해당하는 모든 글자는 똑같이 즉천무후자로만 나타나야겠지만 신라 사경은 어떤 곳에서는 정자체로 쓰고 다른 곳에서는 즉천무후자로 쓰고 있다. 예컨대 人자는 현존 신라 화엄경 사경 '권 제44-50'에서 모두 157번이 등장하지만 즉천무후자가 사용된 곳은 21%인 33자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전체 75번 등장하는 國의 경우, 81%인 61곳에서 즉천무후자를 쓰고 있었다. 즉천무후가 만든 일종의 이체자(異體字. 뜻과 음은 같으나 모양이 다른 글자)인즉천무후자는 극히 한정된 기간에만 사용되다가 폐기되었는데 중국의 제후국이었던신라에서도 일시적으로 이 글자를 사용하기도 했다.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 대표적이며 신라 화엄경 사경에서도 또한 비교적 최근에서야 즉천무후자의 구체적이 실태가 차츰 보고되기에 이르렀다. 이 신라 화엄경 사경은 즉천무후 제위 시절인 서기 699년 중국에서 실차난타(實叉難陀)가 한문으로 옮긴 소위 「주본(周本) 화엄경」을 일일이 베껴 쓴 것으로 원래 전 80권이었으나 지금은 권 제1-10과 권 제 44-50만이 남아있다. 이번 조사성과에 대해 박 실장은 "즉천무후가 사망한 지 이미 40년이나 지난 뒤에 신라에서 이룩된 화엄경 사경에서 다수 보인다는 것은 이 신라사경이 699년에 한역(漢譯)된 「주본 화엄경」을 거의 그대로 옮겼다는 의미가 된다"고 말했다. 신라사경 발견 이전에 현존 세계 최고(最古) 화엄경 사경으로 통용되었던 일본쇼쇼인(正倉院) 소장 신호경운(神護景雲) 2년(768) 화엄경 사경에는 즉천무후자가전혀 보이지 않는다. 박 실장은 이번 조사성과를 오는 5월1-2일 경기 김포시 중앙승가대에서 개최되는 '2004 한국불교학결집대회'에서 발표한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