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연예계는 모두가 동경하는 '낯익은 천국'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연예계의 화려한 아성을 위협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얼마 전 치러진 17대 총선이 그것이다. 총선 정국이 연예계 소식보다 훨씬 재미있었기에 사람들은 눈을 빛내며 뉴스에 채널을 고정했다. 물론 국민의 관심은 재미가 아닌,대통령 탄핵과 여야 구도 재편을 둘러싼 17대 총선의 역사적 중요성에 있었다. 국민의 뜨거운 열망과 요구를 모르는 듯 기묘하게도 총선 정국은 드라마 같은 양상으로 치달았다. 정치가 드라마와 코미디의 자매편이 된 것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여기에 덧붙여 이번 총선은 각종 장르가 망라된 '종합 예술'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코미디와 비극,드라마와 액션,복고와 판타지의 다양한 특성이 17대 총선이라는 하나의 시간대에 집결한 것이다. 대통령 탄핵,촛불시위,자살,사퇴,대국민 사과,삼보일배,박풍,민주노동당 원내 진입,당선자 단체 헌혈 등 주요 항목만 떠올려 보아도 이번 총선이 얼마나 다채로운 코드와 방식의 격전장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속에서 많은 정치인들은 '실체와 실행의 정치'보다는 '이미지와 효과의 정치'에 매달렸다. 전략과 계산이 없는 정치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실체와 실행보다 이미지와 효과가 앞설 때 정치는 빈약한 껍데기로 전락한다. 이번 총선의 발전적인 성과를 인정하지 않는 바는 아니다. 여야의 구도가 새롭게 짜여졌고 소수당인 민주노동당이 제3당이 되었으며 여성의원의 수가 39명으로 늘어났다. 희망적이며 획기적인 일이다. 긍정적인 결과들에도 '이미지와 효과'의 그림자는 어른거린다. 헌정사상 최초의 두 자리 숫자 여성의원 비율(13%)은 여성이 능력을 발휘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여성을 인정하는 이미지를 확보하려는 각 당의 전략적 안배의 효과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우리의 여성 정치가들은 남성 중심 정치의 허점을 '메우는' 역할에 발이 묶여 있다. 여성이 독자적인 역량을 발휘하거나 남성과 생산적으로 상생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번 총선에서 박근혜 대표나 추미애 의원이 한 역할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근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고 아이의 양육이 외가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신모계사회'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여성의 권리와 역할이 증대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실상에는 가부장제의 모순과 균열이 있다. 저임금,실직,이혼 등으로 남성이 가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면서 여성이 책임을 떠안게 된 것이다. 이제 여성은 육아와 가사 외에 경제적 의무도 짊어지게 되었다. 더욱이 그 의무를 또 다른 여성인 어머니와 분담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신모계사회'란 여성에게 더 큰 희생과 고통을 강요하는 부계사회의 왜곡된 형태에 불과하다. 우리 문학에는 오래전부터 '신모계' 혈통의 여성 이야기가 존재해 왔다. 최근작인 김인숙의 소설 '모텔 알프스'도 여기에 속한다. 이 소설에 나오는 윤은 공사현장에서 척추를 다쳐 3년째 누워 있는 남편과 그악스런 시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모텔에서 일한다. 남편과 시어머니는 윤이 도망갈까 두려워하고 윤은 도망치고 싶어 안달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윤은 "여보 나를 물어…내 손가락이 아니라 내 목을 물어뜯어…그리고는 절대로 놓지마"라고 부르짖으며 악착같이 현실을 견딘다. (맞서는 것이 아니라!) 17대 총선을 계기로 우리 사회는 여성의 역사를 새로 쓸 시점에 이르렀다. 여성의 진정한 권리 향상과 더 큰 희생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가 남아 있을 뿐이다. 그 선택이 행복한 미래의 씨앗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행복해지는 것이 두려운 여성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