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총선은 한국정치의 "근본 틀"이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정치사에서 이번만큼 대대적으로 정치인이 물갈이된 적이 없었고 급진 노동세력으로 지목받던 민주노동당까지 원내에 진출한 것이다. 40여년간 우리 정치를 주도해온 "3김"의 영향력을 벗어나 치러진 첫 총선인데다 정치권의 주도세력 자체가 4.19,6.3세대에서 한글세대로 세대교체됐다. 인적청산은 각 당의 공천물갈이를 통해 이미 가시화됐다. 자연 구시대 유물로 여겨졌던 계보정치와 사랑방정치,금권정치가 퇴색하고 선수와 성,연령 파괴현상이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는 양상이다. 실제 각 당의 공천과정에서 다선의원 상당수가 고배를 마신 반면 30,40대의 젊은 후보들이 약진한 것이나 여성후보가 대거 진출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아울러 이번 선거는 3김 이후의 새로운 리더십의 등장을 의미한다. 실제 총선에서 선거 사령탑을 맡았던 민주당 추미애 선대위원장은 40대 후반이고,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50대 초반이다. 전후 세대가 유권자의 절반을 넘어선 현실을 반영하 듯 전후 세대가 정치권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번 선거는 노무현 대통령의 진퇴문제와도 직·간접으로 연결돼 있다. 여권이 선거 결과를 노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와 사실상 연계시킨 상황인 데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을 눈 앞에 두고 선거가 실시됐기 때문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 이 문제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를 개연성도 없지 않다. 달라진 선거풍토도 평가할 대목이다. '돈먹는 하마'로 불렸던 지구당이 없어졌고 군중동원의 폐혜가 컸던 정당연설회와 합동연설회가 폐지됐다. 대신 인터넷 선거운동이 새로운 문화로 정착되는 양상이다. 그만큼 돈드는 선거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됐다는 얘기다. 돈선거에 나섰던 후보들의 대대적인 정치권 퇴출도 예고돼 있다. 이는 앞으로 공명선거가 정착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음을 의미한다. 원천적으로 불법·금권 선거가 어려워짐에 따라 우리의 선거운동 양태도 미디어 선거가 주축을 이루는 등 선진국형으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물론 총선 후 정국상황은 극히 유동적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 여야간 정국 주도권 다툼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선거 결과가 좋지 않은 일부 당은 '총선 책임론'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탄핵심판과 이라크 추가파병,개헌론 등 '핫 이슈'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정국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특히 이번 선거는 초반부터 탄핵정국과 맞물리면서 '찬탄과 반탄' '친노(親盧)와 반노(反盧)''민주와 반민주' 세력으로 양분되는 등 제2의 대선전을 방불케했다. 총선과정을 거치면서 국론이 4분5열됐다는 얘기다. 경우에 따라서는 각 정파간 합종연횡을 통한 정계개편 등 정치권 재편움직임이 가시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열린우리당이 국정안정을 명분으로 의원영입에 나설 경우 민주당이 분란에 휩싸일 수 있고 이렇게 되면 정치권에 적지 않은 파장이 일 수 있다. 거꾸로 총선에서 왜소해진 민주당과 자민련 등이 먼저 활로모색에 나설 개연성도 없지 않다. 그만큼 향후 정치권의 재편요인은 사방에 널려 있다는 얘기다. 이재창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