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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0교시와 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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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교시 수업을 위해 오전 7시30분까지 등교했다가 야간자율학습(이하 야자)이 끝나는 오후 9∼10시가 넘어야 교문을 나선다. 눈뜨자마자 학교에 가느라 아침은 거의 거르고 점심과 저녁은 급식으로 때우니 집밥을 먹는 것은 주말 다섯 끼가 고작이다. 국내 인문계 고교생 대부분의 일상이거니와 교사들의 형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야자의 공식 명칭은 '자기 주도적 학습'.그러나 교사가 옆에 없으면 분위기가 흐트러지기 십상이다. 결국 야자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교사 역시 밤 늦게까지 교실에 남아 있어야 한다. 문제의 원인은 두말할 것도 없이 대학입시다. 누가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얼마나 더 많이 풀어봤느냐에 따라 합격 여부가 갈리는 현 대입체제에서는 학습시간 확대가 결정적인 만큼 어떻게든 공부시간을 늘려야 하는데 교사의 지도 아래 학교에서 공부하면 학원수업을 안 받거나 덜 받아도 돼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교육부가 보충 및 자율학습을 사실상 전면 허용한 것도 이런 현실적 필요성에 따른 조치였던 셈이다. 그러나 새 학기 시작 한 달이 지난 지금 전교조에선 학생과 교사의 건강 및 파행적 교육임을 들어 0교시와 야자 등 강제적인 보충ㆍ자율학습을 전면 거부하겠다고 나섰다. 야자와 0교시의 효과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다. 야자는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어 제대로만 되면 괜찮다는 쪽이 많지만 0교시에 대해선 엇갈린다. 아침시간 활용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늦게 자고 새벽같이 일어나다 보면 수업시간 내내 꾸벅꾸벅 존다는 얘기도 많다. 루소는 '에밀' 머리말에서 '세상 만사의 계획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는 계획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실행이 용이해야 한다'고 했다. 학교 교육은 누가 뭐래도 교사에 의해 이뤄진다. 현실적으로 필요하다면 못하게 하는 게 수는 아니고,그렇다고 학년 초에 분위기를 못잡으면 못잡는다는 식으로 지나치게 무리한 일정을 짜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법과 원칙만 내세우면 협상의 여지는 없다. 수요일 하루쯤 쉬고,등교시간을 다소 늦춰주는 등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도 방법이다 싶다. 교사들의 수고에 대한 정당한 처우방안도 마련돼야 마땅하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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