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알퐁스 도데와 투자유치..김충훈 <대우일렉트로닉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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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kim@dwe.co.kr
십수년 전 프랑스 공장 설립을 추진할 때의 일이다.
당시 프랑스와 EU 정부는 총 투자금액의 35%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원하는 대신 자국민의 고용보장을 조건으로 외자유치에 나서고 있었다.
우리가 투자하려던 지역은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으로 잘 알려진 알사스 로렌 지방이었는데,유명한 철광산지였던 이 지역의 철강산업이 사양화되면서 발생한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자유치에 적극적이었다.
풍부한 철광산지에다 독일과의 접경지역이어서 양국 간 분쟁이 끊이지 않았으며,비스마르크의 독일 통일 후 1870년에 발발한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패하면서 독일의 지배를 받게 되는 비운의 땅이기도 하다. '마지막 수업'은 이 때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프랑스 측 협상단은 관련부처의 국장급 책임자들로 대부분 폴리테크닉 출신의 젊은 엘리트들이었다.
특히 최고 책임자인 롱게씨는 로렌 지방 주지사에 프랑스 중앙정부의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 장관을 겸직하고 있었으며,국회의원으로서 집권당의 당수이기도 한 실력자였다.
협상은 난항을 거듭했다.
그들은 우리를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보잘 것 없는 상대라고 판단했는지 별 기대를 하지 않는 태도로 시종 강경자세였다.
그때 잠시 휴식시간을 틈타 롱게 장관에게 '마지막 수업'에 나오는 그 학교를 방문하고 싶다면서 알퐁스 도데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깜짝 놀라면서 알퐁스 도데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알퐁스 도데의 또 다른 작품들과 그의 문학사상,알사스 로렌에 대한 역사까지 내가 아는 지식을 쏟아 놓았다.
이때부터 프랑스 협상단의 태도가 1백80도 바뀌었다.
내가 프랑스 역사를 자기들보다 더 잘 알고 있는 데 대해 놀라는 모습이었다.
회담은 일사천리로 진행돼 결국 우리가 약 50%의 정부 현금보조금을 포함해 총 60%에 가까운 인센티브를 제공받는 조건으로 투자가 성사됐다.
처음 기대치였던 35%에 비해 2배에 가까운 지원을 받아내는 성과를 거뒀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 수천만달러의 이익을 안겨준 셈이었다.
나는 해외주재원으로 부임할 때 반드시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철저히 공부한다.
해외 비즈니스의 성사를 위해서는 현지인들과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기회를 포착하는 것은 준비된 사람의 몫이라는 명제는,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에서 배울 수 있는 값진 교훈일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