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우리 선거는 바람선거였다.정당마다 바람을 잘 잡으면 선거에서 이긴다는 속설을 굳게 믿어온 탓이다. 그야말로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지 알수 없고,또 언제 시작됐다 언제 끝나는지도 알수 없는 신기루와 같은 선거가 바람선거다.왜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 흔적도 남기지 않아 한바탕 지나가면 그만이지만,바람이 불고있을 동안 위력은 대단하다.누가 바람을 보았는가. 바람을 본 사람은 없다. 하지만 나뭇잎이 흔들리면 바람이 지나가고 있다는 걸 아는 것처럼,표심이 흔들리면 바람선거가 진행되고 있는 줄 아는 것이다. 이번 총선에도 바람은 거세다. 열린우리당의 탄핵역풍과 한나라당의 '박근혜바람'이 맞부딪치면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고 3보1배의 '추미애바람'도 가능성으로 남아있다. 이제 각 정당은 어떤 바람이 더 거세질는지 그것만 예의주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바람선거의 가장 큰 특색이라면 이성보다는 감성위주의 선거라는 것이다. 각 정당들은 자신들이 내놓는 정책들 가운데 무엇이 유권자들의 마음에 들 것인가 하는데는 관심이 없고 반짝 이미지와 일회성 이벤트를 집중 부각시키면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혈안이 돼있다. 이른바 '밴드왜건' 효과를 노린다고나 할까. 바람선거의 두번째 특색은 정체가 불분명한 거대담론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민주 대 반민주', 한나라당은 '거대여당 견제론'을 소리높이 외치고있다.이들 담론이 나름대로 의미는 있겠으나,실사구시가 없으면 허무하다.'민주 대 반민주'가 언제적 얘기냐고 묻는다면 열린우리당은 뭐라고 답할 것인가.또 '거대야당'은 괜찮고 '거대여당'만 문제가 되느냐고 묻는다면 한나라당의 답변은 궁색해지지 않겠는가. 거대담론을 들을 때마다 하늘의 별만 세다 발밑의 구덩이를 보지 못해 빠져버린 천문학자의 우화가 생각난다. 바람선거의 세번째 특색은 정책의 실종이다. 정당마다 정책이 아예 없거나 있다 해도 선심용 공약에 불과하다. '믿어주면 좋고 믿어주지 않으면 말고'식의 하나마나한 공약이다. 또 각론은 없고 총론만 있는 '창백한' 공약이다. 이런 정책들을 남발하는 정당들이야말로 너나할 것 없이 예산조달 능력은 감안하지 않은 채 혜택만 강조하는 '재정적 환상'에 빠져 있다는 증거다. 지금 우리는 바람선거를 치를 정도로 한가한 나라가 아니다. 잠깐 안에서 눈을 떼고 바깥을 보면 10년 불황을 끄떡없이 견뎌내고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일본과 세찬 기세로 뻗어나가는 중국이 있다. 우리의 원자재 파동은 어디서 온 것인가. 우리의 강소국(强小國)의 꿈은 언제 이루어질는지 알 수 없는데, '동남풍만 불어라'하는 제갈량들만 넘쳐나니, 우리의 앞날을 챙겨줄 사람은 누구인가. 바람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지금 각 당이 내놓은 공약들을 보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피와 땀의 공약이 아니라 어떻게든 선거에서 표심만을 잡아보겠다는 알팍한 전략의 산물이란 점이 뚜렷하다.그것도 이른바 '상호텍스트성'공약으로 재탕·삼탕에 남의 당 베끼기 공약이 태반이다.각 당 모두 쌀시장 개방문제는 반대고, 정부나 정치권이 나서서 일자리도 만들어주고 신용불량자 문제도 너그럽게 처리하겠다고 난리다.열린우리당은 연금보험료 인상과 수급액 축소에 대해선 반대하면서도 복지예산 확대만 외친다.기초연금과 소득비례연금으로 연금을 이원화하자고 한 한나라당은 재정확충 문제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보았는가. 해답은 '기업살리기'를 통한 일자리창출과 경쟁력제고인데, 그저 공공정책으로 모든 걸 해결하겠다고 하니 각 정당은 '정부실패'를 모르는 바람잡이인가. 바람처럼 허망한 것도 없다. 일찍이 헤라클레이토스는 "두 번 다시 같은 물에 발을 담글 수 없다"고 설파했지만, 두 번 다시 같은 바람을 맞을 수도 없는 일이다.선거가 끝나면 정당도 유권자도 그 허망함을 아는데, 선거전에는 집단최면이나 걸린 듯 바람의 향방에 목숨을 걸고 바람몰이에 '올인'하고 있으니, 4월은 역시 '잔인한 달'인가 보다. 지금 우리는 바람보다 확고한 것을 잡아야 한다. 선거 후에도 여전히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parkp@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