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열차에서 휴대폰으로 사무실의 메시지를 확인한다. 여러 통의 답신을 보내고 상의한다. 목소리를 낮추고 짧게 끝내려 하지만 워낙 여러 군데라 눈치가 보인다. 남들도 마찬가지다. 저녁 먹고 다시 전화기를 붙든다. 문서를 작성하고 내일 일정을 짠다. 급한 고객이 전화를 걸어온다. 비상 조치를 취한다. '완벽한 업무 처리'와 '고객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간다'는 정신이야 멋있어 보이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죽을 노릇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승진해서는 스트레스성 질환에 시달리면서도 대형 프로젝트를 완수해야 한다. 어느날 정리해고 통지를 받고 나서야 '죽음보다 깊은 휴식'의 벼랑끝에 선다. '화이트칼라의 위기'(질 안드레스키 프레이저 지음,심재관 옮김,한스미디어,1만2천원)는 경제발전의 중추신경이자 생산근로자와는 다른 '특권층'으로 여겨지던 화이트 칼라가 지금 얼마나 처참하게 죽어가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블룸버그 퍼스널 파이낸스' 편집장이자 뉴욕타임스 포브스 등 신문·잡지에 경제 관련 기사를 써온 비즈니스 전문 작가. 그는 월스트리트와 대기업,출판·소매업까지 다양한 직종의 현장을 누비며 화이트 칼라의 비극적인 실정을 파헤쳤다. 회사가 잘나가거나 어렵거나간에 화이트 칼라의 근로 환경이 나빠지는 원인은 무엇인가. 저자는 대대적인 기업 인수합병과 그 후폭풍을 꼽는다. 합병 후에는 비용 절감을 위한 정리해고와 인원감축이 줄을 잇고 정규직은 계약직이나 임시직 등으로 대체된다. 고용불안 속에 저임금·고효율 정책은 계속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복지 혜택은 줄어든다. 이름하여 '초라하기 짝이없는 소모성 부품'으로 전락한다. 그러면 회사나 자본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걸까. 결국 아무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저자는 이같은 비극을 넘어서는 방법으로 종업원지주제 실시와 비정규직 고용 제한,복지혜택 확충 등을 해결책으로 제안한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