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중국 이야기였다. 헌법 개정 문제로 갈등을 빚는 것도, 유사법제로 논쟁을 부른 것도, 언론이 두 진영으로 나뉘어진 것도(이 점은 우리와 정말 비슷하다), 그리고 자유무역협정(FTA)에 매달리는 것도 중국과의 운명적 조우 때문이었다. 고지마 아키라 일본경제신문 편집인의 논리는 매우 드라마틱하게 나아갔다. 그는 수파차이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이 쓴 책을 인용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지난 1830년의 데이터를 보면 당시 경제력이 가장 컸던 나라는 중국이었어요. 세계 경제력의 28%를 차지했었습니다. 2위가 16%의 인도, 3위가 프랑스 7%, 미국은 1%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심플한 논리다. 그는 지금 1세기반을 잠행하던 중국의 부상에 대해, 그리고 세계적인 '국세(國勢) 재편'에 대해 말하고 있다. "중국이 다시 커지고 있다. 인도 역시 무시당해 왔던 시간들을 끝내가고 있다"는 그의 말 속에는 해양(일본)의 침몰은 아닐지라도 대륙의 부상을 경계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고지마 편집인뿐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중국을 고민하고 있었다. 일본 내 1급 동북아 전문가인 후카가와 유키코 도쿄대 교수는 기자와의 대화 주제를 아예 '역전되는 일ㆍ중 밸런스와 동아시아 통합의 향방'으로 제안했다. 그녀는 중국의 부상이 어디까지 나아갈 것인지를 예측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중국이 엉뚱하게도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FTA를 체결하겠다고 발표했어요. 이제 겨우 WTO에 가입해 2006년까지는 이행조건부터 충족해야 하는 개도국 처지에…"라고 후카가와 교수는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당혹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 당혹감은 '개도국 중국'과 '거구 중국'이 교차하는 이중주 때문이다. 후카가와 교수는 작년 이맘 때도 기자와 만난 적이 있다. 그녀는 막 출범한 노무현 체제가 "해양국가를 지향하는가, 대륙국가를 향수하는가"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었다. 사실 기자는 지금까지도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있다. '해양'은 지난 50년간의 한ㆍ미ㆍ일 태평양 안보 동맹에 뿌리를 둔 것이지만 반미 촛불시위에 익숙한 참여 정부의 동북아중심국은 그것에서 거리를 두려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노 대통령이 말하는 '동북아 중심'과 김대중 정부가 추진했던 '동북아 허브'는 정치적ㆍ경제적 함의에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국가 전략의 혼선이요, 국가 포지셔닝에 대한 감성적 대응이 혼란을 키우고 있다. "중국은 아직 FTA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후카가와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FTA를 잘 모르기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교역규모가 지극히 작은 칠레와의 FTA조차 온 나라를 볼모로 잡는 대소동을 벌인 끝에야 겨우 통과시켰다. 그녀는 토론 말미에 "북한에 정변이라도 일어난다면 한ㆍ일 FTA는 한반도의 경제적 안전판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에 정변이라…) 물론 의외로 빨리 닥쳐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엔 그 문제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일본 방문 마지막 날에 만난 게이오 대학의 기무라 후쿠나리 교수는 철저한 무역 논리로 FTA에 접근했다. 업종과 상품 목록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경제 현황을 두루 꿰고 있는 전문가들이 일본에는 많다. 그는 "두 선진국 한국과 일본이야말로 아시아 FTA의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두 개의 선진국이라니? "일본의 업종별 담합구조가 한국 기업의 일본시장 진입을 막고 있다"고 공격해 보았지만 그는 "알아보겠다"고 피해갔다. 이래가지고서야 일이 될 수도 없다. '몸집의 중국, 핵 게임의 북한, 내부 투쟁의 한국, 당황한 일본' 4개국이 그려가는 2004년 봄 풍경화다. 정규재 < 부국장 jkj@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