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탄핵정국 노동계 정치투쟁 안된다..宣翰承 <노동연구원 연구위원>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2004년도 노사관계는 참여정부 출범초보다는 안정될 것으로 우리 모두 전망했다.
그러나 1·4분기 들어 노사관계는 이러한 예상과 달리 불안한 상황을 보이고 있다.
17일 현재 노사분규 참가자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 2천3백63명의 10배인 2만1천37명,근로손실일수는 6만1천27일에 달해 지난해보다도 두배나 많다.
설상가상으로 국회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결의로 빚어진 '탄핵정국'은 노사불안 우려를 한층 증폭시키고 있다.
민주노총은 며칠 전 국회 대통령 탄핵가결에 대한 항의 표시로 잔업거부 투쟁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4월 총선을 맞아 본격적인 정치투쟁의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서구 국가의 노동운동을 보면 정치조합주의에서 경제적 실리주의를 넘어서 사회적 합의주의로 발전돼 왔다.
이제 서구 국가의 노조는 체제변혁주의적 노동운동에서 벗어나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는 성숙한 노동운동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한때 과격한 이념투쟁을 신봉하는 방향으로 전개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동구권의 몰락과 남북화해협력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러한 체제변혁적 노동운동은 사라지고,정책참가를 주요 내용으로 한 정책투쟁을 주요목표로 전개돼 왔다.
참여정부 초기에 노동운동이 다소 과격하게 보이기도 했으나 이는 정권초기에 노동운동을 다소 유리한 상황국면으로 만들어 보려는 전략적 관점으로 봐야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계가 정치 투쟁의 신호탄으로 보이는 '탄핵카드'를 빼드는 것은 경위야 어찌됐든 간에 노동운동의 핵심목표와는 거리가 있다.
예컨대 탄핵카드가 일각에서 제기한 것처럼 노동자 정당의 지원을 노리는 의도가 있다고 한다면 노동운동의 순수성을 의심받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오히려 이러한 전략은 지금 서서히 일고 있는 노동자 정당의 원내 의석확보라는 희망의 싹을 잘라버리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지금 우리나라 경제는 극심한 내수부진에 의한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있으며, 세계화로 인한 무한경쟁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일 사민당(SPD)의 고용,직업훈련,경쟁력에 관한 연대와 비견될 수 있는 일자리창출을 위한 사회협약을 만들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청년실업률은 계속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노동계의 탄핵카드는 이러한 사회협약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고 정부의 일자리 창출로 인한 실업문제해결 노력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부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탄핵정국을 보는 국내외 우려섞인 시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노력만으로 이를 극복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탄핵정국 변수 외에도 우리의 노사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복병은 도처에 널려 있다.
주5일제의 연착륙문제, 노사관계 선진화 프로그램, 비정규직 문제 등은 올해 노사관계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는 뇌관이다.
노사간 갈등이 언제 어디서 표출될 지 모르는 사안들이다.
물론 우리의 노사관계 앞길에 비관적 변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 선임된 민주노총 지도부가 과거와는 다른 노동운동을 펼 것이라는 기대감,노동전문가 출신의 현 노동부장관이 노동행정을 무리없이 잘 이끌 것이라는 기대감 등은 올해 노사관계를 낙관적으로 보게 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탄핵정국과 총선이 겹쳐서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혼돈스러운 상황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런 때일 수록 노사의 협력적인 자세와 국민의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업들도 노동계의 입장을 생각해서 자극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최근 대두되고 있는 임금 가이드라인에 의한 경직적인 임금전략 모형은 좀 더 유연하게 할 필요가 있다.
비자금 수사에서 밝혀지고 있듯이 정치자금 제공 같은 전근대적인 경영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우리 사회는 많은 부문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유독 노사관계에서는 아직 변화의 큰 흐름에서 비껴나 있는 듯하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격랑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도록 노사 모두의 지혜를 기대해 본다.
sunhs@kl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