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는 올려야 한다."(납품업체) "경기도 좋지 않은데 낮추자."(할인점) 식음료·생활용품 공급업체와 할인점간의 가격조정 협상이 뜨겁다. 국제 원자재가격 폭등으로 인한 후유증이 유통업체와 제조업체간 가격 충돌로 나타나고 있다. 인상 요구 폭이 큰 일부 품목의 경우 적잖은 마찰음이 터져나오고 있다. 협상도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예년에 비해 인상 요구가 강한 데다 인상 요구 폭도 2배 이상 크기 때문. 이달을 넘겨 4월까지,심지어 상반기 내내 협상이 벌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2백여개 품목 협상 테이블에 바이어들은 집계가 어려울 정도로 인상 품목이 많다고 전한다. 이달 들어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에 들어온 인상 요구 품목은 2백가지가 넘는다. 된장 고추장은 물론 음료 휴지 기저귀에 이르기까지 먹고 마시고 쓰는 상품이 총망라됐다. 협상 테이블에 오른 품목은 캔을 사용하는 수십가지 음료,콩을 사용하는 고추장 된장 간장 등 수십종의 장류,화장지 기저귀를 비롯한 생활용품 등이다. 이미 소비자가격이 인상된 라면 식용유 두부 콩나물 등에 대해서도 납품업체와 할인점간의 가격협상이 한창이다. 이 가운데 석판 캔을 사용하는 음료업계의 인상 요구가 가장 거세다. 롯데칠성 해태음료 등은 평균 5∼10%의 인상 요구를 밀어붙이고 있다. 롯데의 칠성사이다 펩시콜라 콜드주스 아이시스 게토레이 마운틴듀 밀키스 잔치집식혜,해태음료의 크리미 후레쉬포도 큰집식혜,웅진식품의 초록매실 등이 대표적이다. 캔 자재인 석판 국제가격과 해상 운임이 최고 1백% 이상 올라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게 인상 이유다. 고추장 된장 간장은 업체 구분 없이 국제 콩값 상승을 앞세워 '몸값 인상'을 외치고 있다. 각종 세제류도 4월께 소비자가격이 인상될 조짐이다. ◆할인점이 밀리고 있다 할인점과 납품업체간 가격협상은 대개 할인점이 주도한다. 하지만 올해는 양상이 사뭇 다르다. 원자재가격 폭등에 쫓긴 납품업체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고 있어 할인점들이 밀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바이어들은 매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가격을 조정하는데 올해처럼 무더기로 큰 폭의 인상을 요구한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이마트 가공식품팀장인 안상도 부장은 "12∼15% 인상을 요구하는 품목이 가장 많다"면서 "인상률을 요구 수준의 절반 이하로 낮춰야 하기 때문에 협상이 쉽지 않다"고 전했다. 그는 "가급적 납품업체들의 요구를 들어주려고 하지만 할인점으로서는 한계가 있다"며 "인상 시기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무더기 인상을 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인상 시기 조절만으로 납품업체들을 설득하는 데 역부족이라는 게 중론이다. 중국의 국제 원자재 싹쓸이와 해상 수송용 선박 '몰빵'으로 인해 납품업체들의 부담이 너무 커졌기 때문이라는 것. 할인점 한 관계자는 "국내 요인이라면 납품업체 설득이 쉬울텐데 해외 요인이라서 운신의 폭이 좁다"면서 "상반기 내내 협상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고기완·백광엽 기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