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경영권을 둘러싼 외국계 자본 소버린과 기존 대주주와의 갈등과 경쟁이 3월 주총을 앞두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SK그룹이 국내 3위의 대기업 집단이면서 국가 에너지산업과 무선통신산업의 선도기업을 계열사로 두고 있어 주총 결과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이 높다. 또 SK와 소버린의 분쟁은 대기업 경영권에 대한 외국자본의 도전과 국내기업의 대응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국내 기간산업을 보호하는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을 짚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SK 문제와 관련 있는 국내 행위집단은 크게 셋이다. 첫째는 기간산업을 보호하면서 기업의 투자환경을 제공해야 하는 정부이고, 둘째는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해 온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이다. 마지막으로 경영권을 방어하면서 스스로의 개혁을 모색해야만 하는 기존의 대주주이다. 국가적 위기상황에 대해 세 집단이 갖는 현실인식이 최근 조화를 이루어가는 것은 다행이다. 이헌재 부총리는 취임후 '국내시장을 교란하는 불순한 외부 자본에 대해 강력한 대응의지'를 보였다. 이에 재경부는 국내 사모주식투자펀드 제도를 연내에 도입, 국민연금 등 대형 연기금의 투자를 활성화시켜 성장기반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초기에 소버린과 협력적 관계를 유지했던 참여연대도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있다. 시민단체의 수장이 현지조사를 통해 투자펀드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 '도박형' 투자차익으로부터 소액주주를 보호해야 하는 시민단체의 의무를 확인해 주었다. SK 경영진도 오너 대주주들의 퇴진과 더불어 SK㈜의 사외이사 의결권한을 70%로 확대하고 '투명경영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 집단의 이러한 움직임은 지배구조 개선의 필요성을 공감하면서도 해외단기 투기자본으로부터 국내 기간산업을 보호해야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소버린이 스스로 기업지배구조펀드(CGF)라고 밝혔지만 대규모이며 공개된 투자자본과 명확히 구분되는 소위 '지배구조 침투형' 소액 투기펀드들은 전통적으로 러시아나 동유럽 등의 체제전환형 시장의 중추 기간산업을 겨냥해왔다. 이 펀드들은 기업가치의 본질적인 제고를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경영진에 대한 악의적인 루머를 유포하고 투자대상국 정부의 부패관료들과 결탁해 경영진을 교체하고 기업을 강제 매각하는 방법을 통해 투자수익을 챙겨 왔다. 그리고 시장 성숙도가 높은 남미의 경우 이들은 정유, 석유 및 가스 송출 사업에 집중 투자하는 과정에서 소액주주 및 노조와의 정략적 협력관계를 맺고 경영권을 확보한 뒤 단기적 기업가치의 상승을 통해 수익을 챙기고 시장으로부터 급거 일탈하는 행위양식을 보여왔다. 지난 30여년 간 국가경제의 성장을 견인하면서 고용과 투자를 창출해 온 대기업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경제주체이다. 특히 신규 기간산업 분야에 대한 대기업의 투자는 국가적 차원에서 보호돼야 한다. 불량투기자본의 공격은 기업의 대응만으로는 방어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정보기관을 포함한 정부의 조기경보 기능이 작동돼 국내 진출 외부자본에 대한 대응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시민단체와 노조도 협력적 관계의 구축을 원하는 외부자본의 정체성에 대한 경계를 풀지 말아야 한다. 대기업 경영진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노력이 지속적이고 자발적으로 이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투기세력에 의해 경영권 위기에 노출된 기업들은 적극적인 신규투자를 모색하기 보다는 경영권 방어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자본주의 성장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킬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성장 잠재력이 낮아지고 경제의 저성장 구조가 고착화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와 개방화라는 미명의 도도한 물결이 치고 있는 지금, 우리 경제를 외국 투기자본의 '즐거운 활동무대'로 제공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djchoi@sookmy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