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감독 강석범·제작 제니스엔터테인먼트)이란 긴 제목은 '수사반장'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얼핏 형사물로 연상될 수 있다. 1970년대 인기 만화영화 '우주소년 짱가'의 주제곡 가사에서 제목을 따온 이 작품은 엄정화와 김주혁을 내세운 로맨틱 코미디다. 동네 대소사를 두루 챙기는 동네 반장과 치과 여의사간의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을 그렸다. 홍 반장은 다재다능하다. 시골마을에 사는 그는 이웃이 바쁜 일로 자리를 비울 때 부동산 중개업자,중국음식점 배달원,편의점 점원,라이브카페 통기타 가수,우체부 등을 대행해 주는 일종의 잡부다. 하지만 그저 잡부라고 부르기에는 학식과 용모가 뛰어나다. 상대역인 치과 의사 윤혜진은 부유한 기업인의 딸로 자라나 콧대가 높고 성깔도 대단하다. 스탕달의 고전소설 '적과 흑'이 제시했던 것처럼 남녀가 신분의 불균형을 딛고 연애에 성공하려면 하류층인 홍 반장이 상류층인 윤혜진의 성깔을 꺾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 윤혜진이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해 타인과의 충돌 끝에 수감되고 홍 반장이 이 문제를 풀어주는 에피소드들이 그것이다. 홍 반장은 객지에서 개업한 윤혜진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해결사로 나선다. 이 영화는 부와 지성을 갖춘 여성이 바라는 새로운 타입의 이상형을 제시한다. 그것은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여성이 필요로 할 때 곁에 나타나 사소한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의 남자다. 윤혜진의 아버지가 홍 반장의 배경보다 능력과 인품을 높이 사는 장면은 참신하다. 그러나 혜진의 친구가 제기했던 '홍 반장의 알려지지 않은 3년간의 행적'에 대한 설명이 없다. 취약한 구성력으로 인해 관객들은 홍 반장처럼 이상적인 캐릭터가 실제로 존재할 수 없다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두 연인이 겪는 갈등의 깊이도 너무 얕다.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정서적 파장의 크기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12일 개봉,12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