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보기관의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도청설로 야기된 파문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영국 총리실은 26일 성명을 통해 "정보기관과 관련해 절대로 논평을 하지 않는것이 관행"이라면서도 "영국의 정보기관들은 항상 국내법과 국제법을 준수하고 있다"며 진화에 나섰으나 각계각층에서 토니 블레어 정부의 도덕성 상실을 지탄하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노동당 내 반전운동의 선봉에 섰던 피터 킬포일 하원의원은 일간지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영국 정보기관이 아난 총장을 도청했다는 클레어 쇼트 전 국제개발장관의 폭로는 이라크를 침략하려고 블레어 정부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킬포일 의원은 "블레어 정부는 국민을 기만한 것은 물론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유엔을 오도하려 했다"면서 "이는 중범죄에 해당한다"고 비난했다. 국가기밀누설죄로 기소됐던 전직 정보원 리처드 톰린슨도 BBC 방송에 출연해 "과거 정보기관들이 불법행위를 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면서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엄청난 불법행위가 자행됐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대(對)테러기관인 국내정보국(MI5) 요원으로 활동하다 퇴직한 데이비더 셰일러도 스카이 TV 인터뷰에서 "아난 사무총장에 대한 도청은 불법일 가능성이 있으며 설령 합법적인 일이라고 하더라도 비도적이란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제1야당인 보수당은 쇼트 전 장관의 폭로에 대해 일단 조심스러운 반응을보였다. 마이클 앤크럼 보수당 예비내각 외무장관은 "왜 쇼트 전 장관이 지금 이 시점에서 그런 사실을 폭로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아직도 진실이 무엇인지 확신하지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유당의 멘지스 캠벨 예비내각 외무장관은 "영국은 이미 유엔에서 신뢰를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에 쇼트 장관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난다고 해도 더 이상 손상을 입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탄했다. 한편 브뤼셀에 파견된 유엔의 하센 포다 국장은 "유엔은 완전히 투명하게 운영되기 때문에 비밀 채널을 동원하거나 정탐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우리의 정보는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공개되지 않는 다른정보는 규정에 따라 우리의 보고서에만 사용하도록 돼 있다"고 말해 영국 정보기관의 도청행위가 유엔 규정에 반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유엔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들은 유엔 관리들은 항상 자신들이 도청의 대상이 될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일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도청하는 것이 합법적인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미국 정보기관이 유엔 외교관들에 대한 정탐활동을 영국 정보기관에 요청했다는사실을 폭로했다가 25일 무죄로 풀려난 영국 정보통신본부 통.번역원 캐서린 건을위해 적극적인 구명활동을 벌였던 인권단체 `리버티'의 베리 홀 대변인은 "유엔에대한 불법도청이 영국의 국가안보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영국민은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얻을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런던=연합뉴스) 이창섭특파원 lc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