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63) 시인의 미학강의를 정리한 「탈춤의민족미학」(실천문학사 刊)이 단행본으로 묶여 나왔다. 이 책은 김 시인이 1999년 부산의 민족미학연구소 초청을 받아 여섯 차례에 걸쳐 탈춤과 관련된 민족미학의 기본원리를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여기에 월드컵 대회때 나타난 '붉은 악마'와 '촛불시위' 등 젊은이들의 생동하는 기운을 민족미학의 원리로 해석한 글들이 덧붙여졌다. 저자가 말하는 민족미학의 핵심은 탈춤의 생성원리인 '환(環)'의 사상에 닿아있다. 탈굿의 열두 거리는 따로따로이면서도 끝나는 점과 시작점이 동일하다. '순환하면서 확대되는 고리'로서 '환'의 사상이 민족미학의 원형인 탈춤에 깃들어 있다는것이다. 저자는 "이같은 '환'의 사상은 「천부경(天符經)」의 '삼사성환오칠일(三四成環五七一)'이란 중심구절에 드러나 있으며, '환' 또는 '환중(環中)'은 장자 철학의 주요 테마이며, 일본 학자 사카이(坂井)에 의하면 현대 원자물리학의 핵운동에 관한주요 법칙이라고도 한다"고 책머리에 소개했다. 저자가 제시하는 민족미학의 원리는 이처럼 동아시아의 사상적 배경에서 출발하고 있다. 저자의 강의는 이러한 민족미학의 바탕을 이루는 우리 민족의 사상과 문화의 핵심적 구성원리를 밝히는데서 출발한다. 저자에 따르면, 하나(一)의 세계는 홀수적(카오스적)인 삼수(三數) 분화의 원리와 짝수적(음양적)인 코스모스의 원리가 조합되어 음양오행을 이루고, 이는 동학의'지기(至氣)' 개념으로 발전한다. '지기'는 '혼원지일기(混元之一氣)', 즉 근원적으로 혼돈인 우주 에너지이자 카오스의 질서인 카오스모스(chaosmos.무질서한 질서)의세계이다. 이러한 개념은 '환'의 개념으로 연결되어 끝과 시작이 맞물려 있고, 표면과 내면이 이중적으로 교합되어 있는 탈춤의 미학을 형성한다. 저자는 탈춤에 있어서 시간, 공간, 육체 등 모든 방면을 관통하는 하나의 명제는 '모심'이며, '모심' 속에 작용하는 여러 중추적 미학 기능들 가운데 하나가 곧 '환'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그늘이 우주를 바꾼다'(影動天心月)는 정역사상에 이른다. 저자는 이같은 동양적 미학을 통해 표면과 일방적 시각에 사로잡힌 서구 미학의한계를 넘어서고자 했다. 저자가 책의 말미에 제시한 것처럼 민족미학의 핵심주제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이라는 생명사상으로 귀결된다. 그가 말하는 '기운생동'은 생명학, 생명의 미, 생명예술의 핵심이다. 결국 이같은 생명사상은 민족미학을 뛰어넘어 미학원리의 보편성을 얻어낸다. 368쪽. 1만5천원.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ckch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