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원자재의 가격 폭등과 품귀 현상이 심화되면서 급기야 철강업체들이 사실상의 '배급판매제'에 나섰다. 일부 비철금속 업체들은 원자재를 도저히 구할 길이 없어 생산량을 감축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철강 및 비철금속을 들여다 부품 등을 생산하는 중소기업들의 원재료난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 "불가피한 철강 배급제" INI스틸이 맞춤형 주문생산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철강업체들이 본격적인 배급제를 실시할 전망이다. 수요가 몰리는데 비해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해서다. 올들어 고철의 수입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등 원료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현재 고철 가격은 t당 3백33달러로 지난주에 비해서도 20달러 정도 더 올랐다. 게다가 제일제강 동양메이저(포항철근공장) 등 반제품(빌렛)을 수입해 철근을 생산하던 단순압연업체들이 채산성이 맞지 않아 생산을 중단하면서 기존 전기로업체 쪽으로 수요가 몰리고 있다. 특히 일부 건설업체가 추가적인 가격인상을 우려해 가수요를 일으키고 있고 중간 도매상들은 사재기에 나서는 등 가격 인상과 공급부족의 악순환이 거듭되는 것도 배급제가 불가피한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 INI스틸 관계자는 "최종 수요자들이 철근을 사는 가격이 공장도 가격에 비해 6만∼7만원 이상 차이가 나는 등 유통왜곡 현상이 심해 판매방식을 변경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수요업체별로 주문량이 폭주하고 있지만 이를 다 공급해줄 수 없어 주문량을 일괄 접수한 뒤 과거 거래실적 등을 토대로 공급량을 배정하기 위해서다. 실제 철근 수요량은 월60여만t으로 생산능력의 두배에 이른다는 설명이다. 또 제품의 규격과 사이즈를 미리 주문받기 때문에 제품 생산 판매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줄이고 납기를 맞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과거 계획생산 방식에서는 철근과 형강의 수요를 미리 예측해 크기와 규격별로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선 일부 품목이 남아돌기도 했다. 그러나 주문판매방식으로 바꾸면 이같은 손실을 줄이고 철강재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게 INI스틸측 설명이다. ◆ 비철금속 업체 가동률 낮아져 철강재 뿐 아니라 비철금속 가격도 급등세를 거듭하고 있다. 창틀 은박지 등에 쓰이는 알루미늄 국제가격은 지난 10일 현재 t당 1천6백56달러로 지난해말에 비해 4.0%, 1년 전에 비하면 15.5% 올랐다. 아연은 지난해말 처음으로 t당 1천달러를 돌파한데 이어 최근엔 1천66달러로 오름세를 거듭하고 있다. 국제시세에 환율 변동분, 적정마진 등을 포함해 국내가격을 연동시키고 있는 고려아연 조일알미늄 코리아니켈 등 국내 비철금속 업체들은 원자재가격 상승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부 비철금속 업체는 원자재 구득난으로 생산량을 축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자재인 동광석을 들여와 전기동을 생산하고 있는 LG니꼬동제련은 세계적인 동광석 공급부족으로 올해 생산량이 1만3천t 줄어들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LG니꼬동제련 관계자는 "중국에서 원자재를 싹쓸이함에 따라 원자재 구하기가 쉽지 않다"며 "지난해 50만6천t을 생산했으나 올핸 그보다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LG니꼬동제련으로부터 전기동을 공급받아 황동판 등 각종 동제품을 생산하는 풍산도 지난해 민수용 제품 판매량이 22만7천1백6t으로 전년보다 소폭 줄었으며 올해도 감소세가 이어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소업체들의 비철금속 구득난은 더욱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량구매하는 비철금속 업체들에 비해 비정기적으로 소량을 구입해 오던 중소기업들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정부 공급물량 쪽으로 몰리고 있다. 중소기업의 원자재 구매를 대행해 주고 있는 조달청에는 중소기업의 판매 요청이 줄을 이으면서 대부분 품목의 비축물량이 20일분 정도로 낮아지는 등 수급난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