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전 서울 계동의 현대중공업 사옥. 재무팀 관계자들이 모여 선박 수주 및 건조 대금의 환리스크 관리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이 회사는 선물환 거래도 일종의 '환투기'로 보고 현물환 위주의 거래를 해왔으나 최근 환율 하락(원화 강세) 압력이 심상치 않다고 보고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재무담당 윤병춘 이사는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환율변동 요인이 클 것으로 보여 대응 방안을 다각도로 마련하고 있다"며 "원화 강세에 대비해 선물환 매도를 늘리거나 이종 통화간 파생금융상품을 이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환 리스크 관리가 올해 기업 경영의 최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원화 환율이 달러당 1백원 떨어질 경우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 주요 수출기업들의 채산성이 20∼30%가량 하락할 정도로 민감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 '환차익도, 환차손도 내지 마라' 삼성은 올해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주요 계열사에 위안화의 평가절상 가능성에 대한 경계령을 내려 놓은 상태다. 실제 삼성전자 중국 본사는 올들어 달러화 대신 위안화 예금 비중을 급격히 늘려 가고 있다. 국내 계열사들은 수출대금 및 수입 결제대금을 현 수준에서 동결할 수 있도록 선물환 거래를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단순히 순유입 대금에 대해 헤지(위험 제거)하는 전략만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외환운용 기간 자체를 줄이는데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특정 날짜에 '금고'에 단 1달러도 남겨 놓지 않는 '스퀘어 포지션' 전략을 월간 단위로 수립해 운용하고 있다. 따라서 일부 예금분을 제외하고 넘치는 달러는 현물환 시장에서 대부분 팔고 있다. 윤종용 부회장은 이와 관련, "환차익도, 환차손도 내서는 안된다"며 "설령 환율이 30% 하락하더라도 목표 이익을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려놓기도 했다. ◆ '아무도 믿지 마라' 주요 기업들은 단기적으로 현ㆍ선물환을 동시에 매도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환율 움직임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는데 기업들의 고민이 있다. 이에 따라 주요 기업 외환담당자들 사이에는 '정부든 금융회사든 어느 누구의 말도 믿어서는 안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단기적으로 예상되는 원화 강세 흐름에 대응은 해나가겠지만 이같은 추세가 언제까지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순유입 외환의 40% 가량을 선물환으로 매도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선물환 거래를 하더라도 중장기 거래는 자제하고 있다"며 "리스크 분산을 위해 유로화 결제 비중을 늘리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일각에서는 올 하반기 환율이 급반등세로 돌아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씨티은행의 문성진 수석지배인은 "기업들이 선물환 시장에서 지나치게 투기적으로 매도하는 자세를 나타낼 경우 예상치 않은 난관에 봉착할 수도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환율 변동에 따른 수익관리의 불투명성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