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제(春節ㆍ설) 휴가기간인 지난달 27일 밤. 상하이항의 와이가오차오(外高橋)부두는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부두에서는 컨테이너 선적 작업이 한창이었다. 거대한 크레인이 컨테이너를 차곡차곡 쌓고 있고, 그 아래에는 컨테이너 트럭이 야적장과 터미널을 분주히 오갔다. 대륙이 춘제 명절로 잠들어 있을 때에도 상하이항은 하루 24시간 정상업무가 이뤄지고 있었다. "설 연휴는 야적장에 쌓인 컨테이너를 소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때 일을 해야 창장(長江ㆍ양쯔강) 삼각주에서 밀려드는 화물 물량 처리에 숨통이 트입니다. 상하이항은 양산(洋山) 심수항이 완공되기 전까지는 물량 부담에 시달려야 할 것입니다." 상하이항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상하이궈지강우(上海國際港務)그룹의 루하이후(陸海祜) 사장은 "올들어 상하이 지역 물량 증가가 더 탄력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1월 하루 평균 3만개(TEU 기준) 이상의 컨테이너를 처리, 월 1백만개 목표를 달성했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춘제 기간 중 상하이 출신 정치인인 황쥐(黃菊) 부총리는 상하이항을 방문, 양산항 개발에 대해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지정학적 위치를 충분히 고려해 상하이항을 개발하라"는게 그 것이다. 양산항을 상하이뿐 아니라 중국 동부지역에 형성되고 있는 '포트벨트(Port belt)'의 중심 항구가 될 수 있도록 건설하라는 얘기다. 포트벨트란 다롄(大連)에서 시작,톈진(天津)-칭다오(靑島)-상하이-닝보(寧波)-샤먼(厦門)-푸저우(福州)-선전-광저우(廣州)등으로 연결되는 항구를 일컫는다. 21세기 태평양 경제강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국이 동해안에 구축한 해양진출 전초 기지다. 지난해 이들 포트벨트에서 처리된 국제 컨테이너는 4천7백66만개. 이로써 중국은 세계 최대 항만국가로 올라섰다. 상하이와 선전항구는 지난해 부산항을 제치고 세계 3,4위 항구로 부상했다. 황 부총리의 지적은 결국 상하이 양산항을 창장삼각주 지역의 화물뿐 아니라 다렌 칭다오 등 북부지역 물량도 흡수할 수 있는 포트벨트의 중심 항구로 건설해야 한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게 바로 오는 2020년 현 부산항의 3배 규모로 들어설 세계 최대 항구 양산항의 청사진이다. 그렇다고 북부지역 항구가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포트벨트에 속한 각 항구는 거점항구를 목표로 치열한 증설 경쟁을 벌이고 있다. 칭다오항이 대표적이다. 칭다오는 지난달 19일 대대적인 항만 확장공사 완공식을 가졌다. 기존 항구 컨테이너 처리 능력을 6백50만개 규모로 늘린 것이다. "칭다오항의 증설은 부산항을 견제하기 위한 것입니다. 칭다오는 다롄과 톈진항에서 흘러나오는 컨테이너 환적 화물을 직접 미국 유럽으로 보내려고 합니다. 중국의 화물이 더 이상 부산항으로 갈 이유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현대상선 칭다오지점 최형기 소장의 분석이다. 실제로 프랑스 해운사인 CMA와 중국 차이나쉬핑은 공동으로 칭다오~미국 노선을 개설했다. 지난해 중국의 항만 증설규모는 약 8천2백20만t(화물처리 능력)에 달한다. 모두 1백27개의 심수항 터미널이 건설됐고,이중 1만t급 이상의 배가 접안할 수 있는 터미널만 45개에 달하고 있다. 중국의 수많은 소규모 항구도 미래 국제항구를 향해 증설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중국의 모든 해안에는 지금 '건설 중'이란 팻말이 걸려있는 셈이다. 상하이에서 항저우(杭州)를 향해 자동차로 한시간을 달려 도착한 자싱(嘉興)현 해안에 자리잡고 있는 자푸항. 목재 석탄 철강재 등 중국 각지에서 몰려든 원자재가 저장(浙江)성으로 들어오는 작은 국내선 전용 항구다. 이 항구 역시 증설 열기에 휩싸였다. 중국은 지금 15세기 초 세계 해상을 장악했던 정허(鄭和)군단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는 것이다. 상하이ㆍ칭다오=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